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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n 30. 2019

비 내리는 날

비가 내린다. 구름은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사라질 줄 알면서 품었던 물기 다 쏟아낸다. 자연은 눈치 보고 꾀부리지 않는다. 새는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나무는 수분을 힘껏 빨아올려 잎을 올린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렇개 한다. 게으르고 주저하는 건 오직 인간이다.

비가 내린다. 비는 구름이 변해서 생긴다. 하늘은 땅에서 수증기를 끌어올려 구름을 만든다. 수증기는 땅의 마음이어서 구름이 되어 하늘과 어울린다. 땅은 다시 중력으로 름을 당긴다. 비는 하늘의 마음이어서 내리며 땅을 고루 적신다. 비 온 뒤에 땅이 다시 마르는 것은 하늘과 땅이 그렇게 계속 밀당 중이라는 뜻이다. 

비가 내린다. 나뭇잎은 비로 몸을 씻어 땅으로 내려 보내고, 뿌리는 비를 마실 만큼 마시고 다시 땅 속으로 흘려보낸다. 식물은 자기 몫 이상을 모아놓지 않는다. 시냇물도 강물도 자기 폭만큼의 물을 담아 바다로 흘려보낸다. 자연은 필요 이상을 탐하지 않는다.  

비가 내린다. 사람들이 우산을 하나둘 펼쳐 쓰고 거리를 걷는다. 사람은 자기 몸 가릴 정도의 우산을 쓴다. 두세 개를 쓰거나 파라솔 같이 커다란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는다. 빈부와 지위에 관계없이 다 비슷한 크기의 우산을 쓴다. 가끔 둘이 같이 쓰기도 한다. 사람은 우산을 쓸 때서야 그나마 연을 닮는다.

나도 비처럼 삶에 게으르지 않기를, 사랑에 주저하지 않기를, 필요 이상 욕심 내지 않기를, 소박함에 만족하기를, 비 내리는 날에 하늘을 보며 한껏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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