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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l 13. 2019

개가 귀여운 이유

개 식용 논쟁에 대하여

올해 초복에도 예년처럼 '그' 집회가 열렸다. 국회 앞에서 동물 보호 단체는 '개 식용 반대' 집회를 열었고 그 옆에서 개 사육 농민단체는 '개고기 시식회'로 맞불을 놓았다. "어떻게 개를 식용으로 할 수 있느냐"라는 말과 "예부터 우리 보양식인데 어떠냐"라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우리 법에서는 소, 말, 돼지, 닭 등 동물 36종을 축산법에, 그중 13종을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가축'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개는 축산법에서만 '가축'이다. 그래서, 식용을 위한 개의 '도살'은 어정쩡하게 불법은 아닌 채로 '유통'이나 '위생' 등과 함께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관계자들 사이에도 '가축'으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거나, 반려견이므로 '가축'에서 아예 빼야 한다거나 하며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예전에 본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들소 떼가 굶주린 늑대들에 쫓기다 한 마리가 끝내 뒤처졌다. 늑대들에 둘러싸여 버텨보지만 결국 지치고 상처 입은 채로 그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 처절한 싸움 동안 다른 들소들은 아무도 돕지 않고 그 광경을 멀찌감치 그냥 지켜보고 서 있었다. 굶주린 그들이 배를 채워야 더 이상 자신들을 좇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질서는 냉혹하도록 명백하다. 약한 동물은 풀이나 아니면 더 약한 동물을 먹고살다가 더 힘센 동물에게 자신의 살을 내어 준다. 같은 종족 중에서도 느리고 약한 부류는 포식자에게 우선적으로 당하고, 개중에 살아남은 날쌔고 강한 부류가 번식으로 후손의 삶을 도모하여 종족을 보존한다.   


진화는 종족을 유지하기 위한 극복의 과정이다. 낙타의 혹과 사막여우의 긴 귀가 척박한 사막에서 양분을 저장하고 열을 배출할 수 있게 하듯, 북극곰의 희고 두툼한 털이 눈에 띄지 않고 따뜻하게 하듯, 생물은 진화하며 환경에 적응한다.


최승호 시인은 그의 시에서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했다'라고 했다. 도마뱀은 짧은 다리를 퍼덕여 날개를 만들어냈고, 무서움을 알아 위장을 잘하는 개체는 점점 보호색이 뛰어난 후손으로 성장했으며, 도무지 체력에 자신이 없는 인류의 조상은 두뇌를 이용하여 자연계 최상의 포식자로 등극하였다.

얼마 전에 개의 진화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개는 3만 년쯤 전에 고대 늑대로부터 분화되고 만 7천 년 전쯤부터 사람이 길들이기 시작하여 사냥을 돕고 가축들을 지켜주며 사람의 곁에 함께해왔다. 최근 연구자들은 개의 눈 근육에서 늑대와 달리 눈썹과 눈꺼풀을 뒤로 당겨 올리는 근육이 발달되어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 근육으로 눈을 둥글고 초롱초롱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을 잘 돌보게 하는 반응을 이끌어 내고 다고 했다.


종의 진화가 자연환경을 극복하는 방향보다, 다른 종에게 예쁨 받도록 진행되었다니 신기한 일이다. 가끔 아파트 단지에서 주인과 산책하는 개를 보면 서로 다른 종과 저렇게 정서적으로 친밀하게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을까 생각한다.  

Juliane Kaminski et al, Evolution of facial muscle anatomy in dogs, PNAS (2019)

자연계 최상위 포식자 인간은 적어도 다른 동물에 잡아먹힐까 봐 걱정은 안 하고 산다. 오히려 잡식의 무한 식욕으로 땅과 바다, 하늘의 온갖 생물들을 도륙하는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을 느끼고 지능이 높아 보이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선뜻 잡아먹기를 꺼린다. 침팬지나 돌고래 앵무새 같은 동물이 대표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람과 눈을 맞춰 교감하는 개에 대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브리짓 바르도라는 옛날 프랑스 배우가 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오히려 은퇴 이후 동물 보호 운동을 하면서 한국에서 더 유명해졌다. 한국의 개 식용에 대해 '야만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80년대부터 엄청 비난을 퍼붓는 바람에 '문화적 상대주의'를 논할 때 대표적인 나쁜 사례로 언급되는 이름이 되었다.


이번 집회에는 할리우드 여배우 킴 베이싱어가 입국하여 참석했다. 브리짓의 오만함과는 달리 그녀의 모습과 발언에서 한국의 개 식용 문화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초복 날 국회 앞의 시위 광경은 과거의 개 식용 문화가 존재하고 현재의 법제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킴 베이싱어와 동물보호단체나 육견사육협회나 다들 입장은 뚜렷했고, 서로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어쨌든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는데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는 각자의 입장과 발언은 존중되어야 하며, 특히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무엇인가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무시하거나 빈정대거나 할 권리는 없다.


다만 자연에서 특이하게도 다른 종인 인간에게 보호 받도록 진화해가면서 만 7천 년의 긴 시간을 인간과 같이 보내고 있는 개라는 종의 눈물겨운 정성은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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