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서

by 그래도

오전 7시 정각. 커피숍 간판에 불이 켜짐과 동시에 안으로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OOOO입니다." 직원들의 익숙한 톤 높은 인사 목소리에 가볍게 머리 숙여 답하며 자리를 찾는다. 일부러 개장 시간 맞추어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지하철은 시간이 분 단위로 정확하여, 매일 타는 지하철이 회사 근처 역에 도착해서 커피숍까지 천천히 걸으면 딱 그 시간이 된다. 커피숍 간판은 정확히 7시 정각에 불이 들어온다. 그 시간에 맞추어 직원들은 카운터 주변에 자리 잡고 나는 문으로 들어온다.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서로의 만남은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아침 일찍 커피숍에 들어설 때 밤새 내부에 가라앉아 남아있는 묵직한 향기가 느껴져서 참 좋다. 습한 나무 숲 속에서 나는 듯한 독특한 그곳의 향기가 어두운 톤의 실내 분위기와 어울려 풍겨 나오면 나는 천천히 그 향을 느끼며 자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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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내가 앉는 곳은 정해져 있다. 통유리로 바깥을 향해 가지런히 늘어선 자리 중 맨 오른쪽 아니면 직원들이 커피를 제조하는 자리 바로 너머 구석 자리 중 하나. 그날 기분에 따라 앉는 자리를 정한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싶을 때, 예를 들면 비 오는 날이거나 햇살이 참 좋다 느껴지는 날에는 창가 자리에 앉고, 보통은 구석에 놓인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을 한다. 사이렌 오더라고 한다.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인데,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 아름다운 소리에 취한 선원들이 물에 뛰어들거나 배가 난파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매혹적이지만 무서운 요정이다. "김병수 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잠시 후 나를 찾는, 다행히 지나치게 매혹적이지는 않은 사이렌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 중에 내 이름이 온전히 불리는 유일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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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승선표를 받는 선원이 되어 커피를 받아 들고 앉아 나만의 항해에 나선다. 항해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니면 멍하게 앉아서 한 시간 남짓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커피숍 안에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와 빈자리를 채운다. 다들 서로의 시선이 최대한 방해받지 않는 곳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아 각자의 세계로 항해를 떠난다.


커피숍에는 거의 한 달 동안 항상 같은 음악이 흐른다.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백색소음 같은 음악이지만 가끔씩 귀에 들어온다. 음료 주인을 찾는 사이렌의 외침도 마찬가지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냥 귓전으로 흘러간다. 바다에서 들리는 갈매기 소리나 파도 소리, 바람 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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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간에는 커피숍을 혼자 찾는 이들이 많지만 여럿이 와서 큰 소리로 대화하는 이들 역시 있다. 대화의 주제는 보통 돈이나 일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그 소리는 쉽게 외면되지 않는다. 이렇게 주변 소음이 나에게 점차로 들이닥치면 이제 항해를 마칠 시간이라는 뜻이다.


자리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나서 "안녕히 가세요." 하는 직원들의 인사를 뒤로 하며 커피숍을 나선다. 맑은 아침 햇살과 신선한 공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이 나의 귀항을 반긴다. 사이렌의 마법 속에서 항해하면서 머릿 속이 이른 아침의 피곤에서 벗어났다. 이제 온전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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