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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Sep 15. 2019

꽃을 담다

아침에 성북동 길상사에 다녀왔다. 길상사는 법정 스님께서 세우고 머무셨던 절이다. 조그만 시냇물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진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서, 가끔 찾아 마음을 쉬어가는 곳이다.


추석 연휴 끝이라 법회가 없어 한산한 경내에 오늘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출사 나온 분들이 많았다. 꽃무릇이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어서다. 먼저 피어난 붉은 꽃무릇은 촬영의 주대상이 되어 커다란 렌즈를 들이대는 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사진 찍는 이들은 여러 각도에서 렌즈를 당겨가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꽃을 대하는 자세에서, 자연에 대한 차분한 감상보다 좀더 잘 찍어보려는 욕심이 보였다. 그들은 꽃무릇이 꽃이 되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꽃이 시들고 나면 물론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꽃이라면 많이 불편했겠다. 조용한 경내를 울리는 셔터 소리, 부산한 그들의 대화 소리도 거슬렸다.


나는 매번 그러듯이 절 한 바퀴를 천천히 산책하고 대웅전으로 들어가 앉았다. 대웅전 부처님 앞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슬그머니 이것저것 바라는 것이 떠오르고, 그 일이 잘 이루어지길 빌게 된다.

문득 밖에서 꽃을 카메라로 담고 있는 이들과 대웅전에 앉아있는 내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에 대한 고려 보다는 현재 모습에만 관심의 렌즈를 들이대고, 오래 두고 바라보는 여유보다 순간의 성취에 욕심 내고 바라는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깊게 느끼기보다 서둘러 담는 것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법정 스님께서는 길상사에서 오랜 시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가셨다. 오늘 오랜만에 찾은 길상사에서 나는 무엇을 바랐나 생각하다가, 지금 바라는 것에 욕심내기보다 묵묵히 마음 평안하게 실천하면서 살아야겠다 생각하며 돌아왔다.

나오는 길 꽃무릇 꽃밭에 햇볕이 들어 이슬 맺힌 꽃잎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오면 많은 꽃들이 더 활짝 피어있겠다 싶었다. 마음에 꽃을 담고 돌아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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