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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Sep 22. 2019

미련을 버렸다

옆집이 이사를 간다고 했다. 한 달간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엘리베이터에 붙은 벽보를 보고서야 알았다. 얼마 전 그 집 아저씨가 뭔가 버릴 것을 잔뜩 들고 내려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 그랬구나.'


이사 갈 때가 되면 무엇인가 많이 버리게 된다. 이직이나 진학처럼 어디론가 몸이 움직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함께 하지 않아도 괜찮은 물건들을 덜어내어 몸을 가볍게 한다. 보통 한 곳에 오래 머물렀거나 예전과 달라지는 것이 많을수록 많이 버리게 된다.  

마음이 움직일 때도 그렇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좋아했던 물건에게서 마음이 떠나는 순간 버려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마음도 몸과 마찬가지라서 한 곳에 오래 두었거나 예전과 많이 변할수록 버릴 것이 많아진다. 다만, 마음은 물건을 버린다고 해서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사 때와는 다르다.  


모든 사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오래 두고 자주 쓰는 물건이 빨리 낡겠지만, 실제로 버려지는 것은 그런 물건보다는 한참 쳐다보지 않던 물건들이다.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던 물건이 우선 검토 대상이 된다. 그래서, 무엇인가 버리는 것은 스스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변한 것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된다.

요즘 일회용과 디지털 세상 속에서 버리는 일이 아주 쉬워지고 또 잦아졌다. 한 번 쓰고 바로 버리는 것이 일상이고, 스마트폰에서도 앱을 깔거나 사진을 찍었다가도 손 끝으로 가볍게 밀어 휴지통에 버린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구했다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버리고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정작 버려야 할 것은 안 버리고 엉뚱한 것만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책상 위, 서랍과 가방 속, 마음속. 진작 버려야 할 것이 어딘가 눌러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몸과 마음의 시선을 한 번씩 돌려보면 좋겠다. '미련'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버리고 버리는 일상 속에서 계속 미련을 가지고 버릴 것으로 산을 만드는 미련한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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