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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Oct 17. 2019

시간은 내는 거라서

작년에 우리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긴 후배 직원에게서 얼마 전 카톡이 왔다. 퇴직한 후 직장을 구하는 동안 내게 연락을 해와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었다. 이후에 건강도 좋아지고 괜찮은 직장을 구했다는 연락이 와서 축하해준 지도 꽤 되었다.


이제 업무 관계로 우리 회사 근처로 가끔 올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 잘됐다 한번 들러서 얼굴이나 보자 했더니, 일정대로 움직여야 해서 비는 시간이 없다는 답이 왔다. 카톡으로 안부를 전했으니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하는 듯해서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좀처럼 스스로 빈 틈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풀이 땅에서 자라나듯 저절로 '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나 무엇을 위해 '내는' 것이다. 시간 자꾸 만질수록 말랑해져서 안에 밀어 넣을 공간이 만들어진다. 보통 그렇게들 시간을 비워낸다. 그래서 비는 시간이 없다는 말은 굳이 나에게 시간을 만져 만들어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내가 바빠서 볼 시간이 없네." 혹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면 서로의 관계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살면서 바빠서 도저히 못하는 일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뜻이고, 조정하거나 포기하면서 까지 비워낼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할 때, '선약'은 단순히 시간 순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신없어서 연락 못했어."라는 말도 가끔 듣는다. 정말 정신이 없다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살아있는 이는 누구나 정신을 가진다. 다만 그 말은 다른 일에 정신을 쏟느라 나에게 까지는 그의 정신이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


오늘 오후에 그 후배 직원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내일 오전에 우리 회사 근처에 올 일이 생겼는데 선약이 없으면 같이 점심 먹자고 했다. 나도 마침 약속이 없어서 기로 했다.

관계는 기대와 충족의 함수이다. 사실 나도 그동안 그에 대해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연락한 이에게 되려 서운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사실 나의 기대치를 빼고 보면 별 같이 많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시간 내서 내게 말 걸어 주는 이가 있음은 고마운 일이다. 관계는 마치 기찻길 같아서 오가는 기차가 끊기고 방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주위에는 풀이 자라고 철길은 점점 녹이 슨다.

카톡 대화방이나 통화 목록을 몇 번 위로 밀어 아래로 내려보면 기억이 상기되며 스쳐가는 모습이 있다. 잠시 무심하게 인사를 툭 던지는 시간이라도 한번 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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