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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an 16. 2020

차별의 먹이사슬

예전 유튜브에서 봤던 한 수학 강사가 갑자기 실시간검색 1위에 떴다. 예전에 유튜브 영상에서 미모로 화제에 올랐던 강사였다. 작년 말 메이저 인강 학원이 영입했다는 광고로 시내버스에 얼굴이 크게 붙었던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정도 학원에 진출한다면 기본 역량은 갖추었을 거로 생각했다. 몇 년 전 ‘영어의 여신’이라 해서 강사들의 미모로 승부했던 컨셉의 학원이 등장과 동시에 바로 사라져 버렸듯 학원 시장은 외모가 다하는 시장은 아니다.

사진 : 영어의 여신 블로그

실시간검색 1위의 원동력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었다. “공부 안 한 수학 7등급 학생은 ‘지이이잉’ 용접 배워서 호주 가야 된다. 돈 많이 준다.”라는 말이 화근이 되었다. 용접공 비하 발언이라는 비판을 중심으로 갖가지 불편한 말들이 쏟아졌다. 실제 호주에서 일하는 용접공은 영어도 잘해야 하는 기술 전문직을 무시했다며 유튜브 영상을 통해 분노했고, 어떤 댓글에서는 강사의 출신 대학을 언급하며 SKY 대학도 아닌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그러냐고 비난했다.

사진 : 유튜브 방송 캡쳐

슬펐다.  비난이 또 다른 차별을 부르고 있었다. 호주가 아닌 국내 용접공을 언급했다거나, 만약 강사가 서울대를 나왔다고 한들 차별의 정도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차별은 좀 더 약자를 향하고,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사회가 진보하며 성별이나 국적, 장애인처럼 명확히 구별되는 대상에 대한 차별은 조금 나아졌지만, 경쟁에서 밀렸다고 생각되는 이에게는 아직 가혹한 차별이 있다. 육체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역사가 깊고, 비정규직이나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다른 이를 차별하여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차별의 먹이 사슬이 이어진다.

대학 시절에 학교 안에서 집회가 가끔 열렸다. 민주화 열기에 노동운동이 활기를 띠던 시절 ‘노학연대’를 앞세운 집회에는 각종 노동 단체에서 많은 노동자가 참여하곤 했다. 한 번은 깜짝 놀랐다. 전문 사회자가 진행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식전에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넣어 개사해 부르는 노래는 이랬다. “OOO 아버지는 똥 퍼요. 그렇게 잘 풀 수가 없어요. 건더기 하나 없이 잘 퍼요.” 노동자 집회 사회자라는 이의 노동에 대한 감수성 수준이 그 정도였다. 지금 우리의 다른 직업인에 대한 감수성은 어떠할까? 좀 나아졌을까?

사진 : Dell 울트라북 광고

“세상에 멋진 일이란 없다. 그 일을 멋지게 해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광고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일이든 직업으로 묵묵히 생계를 꾸려가는 이는 존중받아야 하며, 일에 스스로 만족하고 게다가 잘 해내기까지 하면 정말 훌륭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걱정된다. 자라는 아이들이, 앞으로 다양한 직업을 통해 행복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뱉어지는 어휘들에 상처 받지 않을는지, 혹시 직업 자체가 차별의 이유가 되는 이런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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