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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Feb 01. 2020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

"어 이렇게 시들었네."  바라보니 아내가 시든 포인세티아 화분을 들고 있다. 아차 싶었다. 작년 연말에 거실 트리 옆 두었던 포인세티아. 붉은 잎이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려 매년 연말에 사 오면 초록잎으로 변할 때까지 키우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뭐가 바빴는지  주는 것을 한참 잊었다. 바싹 마른 잎을 보며, 같이 있으면서도 미처 돌보지 못한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돌보지 못하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는 걸까." 강아솔의 노래 '섬' 중 한 구절을 떠올렸다. 일상은 무엇인가 돌보는 일로 채워진다. 가족이나 연인을 돌보고, 회사일과 집안일, 개나 고양이를 돌본다. 사는 일은 스스로 돌보는 일이기도 해서 배고프면 음식으로 돌보고, 추우면 두꺼운 옷으로 돌보며, 피곤하면 잠으로 돌본다. 돌보는 일이 다 그렇듯이 정성을 다한다고 그만큼 잘 크는 것도 아니고, 미처 챙기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해서 이래저래 마음이 안타까운 순간이 많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처럼, 삶에서 소중한 것들은 보통 수줍고 과묵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앞에서 뒹굴대고 소리치는 것을 우선 돌보다 보면 뒤에 남은 포인세티아처럼 천천히 시들고 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 순위는 하루 종일 '저요 저요. 좀 봐주세요.' 하며 바삐 오르내리지만 그 순위에 정작 소중한 단어가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는 것처럼. 사라진 후에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깨닫고 후회하게 되는 게 주로 소중한 일인 것처럼.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앞둔 사랑하는 두 여인은 서로 마주 보며 소중한 기억을 나눈다. 선택이었으나 결국 필연적으로 흘러온 많은 일은 후회가 아닌 기억의 대상으로 간직하면 된다. 때로 결혼이 후회될 때 나를 붙잡아주는 것은 기억이었다. 처음 연락하고 잡던 떨리는 시절을 기억하고, 기억 속 사랑했던 것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비록 많은 것이 사라졌어도 싱싱한 붉은 잎, 초록잎으로 크리스마스를 빛냈던 포인세티아를 기억한다.

집안 여러 화분 한쪽에 크로커스가 꽃을 피웠다. 미처 몰랐다. 몇 년 전 겨울에 들어와서는 키만 자꾸 자라서 저게 부추인가 뭔가 했었는데 가끔씩 꽃을 피운다. 그 옆에 작년 봄에 들어온 호야도 처음 꽃을 피웠다. 이들의 꽃피는 시절을 사진으로, 그리고 기억에 담아본다. 내가 지금 돌보는 모두는 언젠가는 떠나보내거나 떠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돌보는 시간만큼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서로 웃고 사랑하는 지금 시간만큼은, 기억 속에 잘 담아두어야겠다.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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