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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r 08. 2020

란다우 부인께

영화 '아이히만쇼(The Eichmann Show,2015)' 감상문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날 부인이 저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준 음식을 먹으며 너무 행복했습니다. 계속된 촬영에 지치기도 했고, 제대로 따뜻한 식사를 챙겨 먹지 못했거든요. 특히 그날은 아이히만과의 대결에서 완패했다고 생각하고 절망했던 날이었지만, 용기를 북돋는 부인의 말과 음식 덕분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부인이 저에게 유대인은 이스라엘에서 단잠을 잔다고 했던 말의 뜻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중계하면서 제가 목표로 했던 일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저는 피해자의 증언과 참혹한 영상 앞에서 동요하는 그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 평범한 인간이 스스로 우월하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파시스트라는 괴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지요. 하지만 6백만 유대인 학살을 계획했던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체 앞에서도 표정 변화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방 창문 너머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저는 그만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부인, 그날 호텔에 돌아왔을 때 부인께서 저에게 말을 걸었고, 저는 지금까지 해온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부인은 체코슬로바키아 난민으로 겪은, 아무도 믿지 않아 그냥 묻어 놓았던 고통의 과거를 사람들이 이제 듣기 시작했다고 하셨지요. 제 덕분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그것은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112명 용감한 증인들 덕분입니다. 무관심 속에 숨겨왔던 새겨진 식별번호처럼 생존자들은 그동안 침묵을 스스로 강요받았습니다. 자신들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슬픈 기억 때문이었겠지요.


이번 재판은 단지 아이히만 개인의 죄를 묻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드러내고 정의의 이름으로 공정히 단죄하여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지요. 부인과 같은, 이 땅에 살아남은 분들 가슴에 품어온 역사의 소리에 세상 젊은이들이 양심의 귀를 기울인다면, 그래서 더 배우고 생각한다면 저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은 것입니다.


부인, 부인께서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며 살고 계신 이스라엘은 이전에는 아랍인의 땅이었습니다. 아랍과의 독립 전쟁에서 절실히 싸우셨지만, 신의 선택으로 우월하다는 생각과 타인에의 증오는 또 다른 파시즘을 낳기도 합니다. 부인께서는 제가 호텔에 머무는 동안 제 이름을 계속 부인에게 익숙한 발음으로 부르셨지요. 진정한 연대는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호로비츠가 아닌 허위츠입니다. 란다우 부인, 저는 부인의 이름을 올바르게 발음했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 가족과 함께 뉴욕에 돌아왔어요. 다음에 제가 이스라엘을 다시 찾을 때는 부인의 희망처럼 란다우 호텔이 고급 호텔이 되어있기를,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부인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잠을 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세요. 부인의 삶이 소외당하는 이들과 항상 함께 하길 빕니다.


당신의 친구,

레오 허위츠로부터


사진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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