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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Apr 04. 2020

총알의 고백

영화 '7월 22일(22 July, 2018)' 

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빠르고 강한 회전력으로 사람의 살을 헤집고 내장을 터뜨리며 뼈를 부숴버리지요. 물론 빗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에게 들어가는 순간 그의 삶은 생물학적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제가 꿈꾼 삶이냐고요? 그럴 리가요. 땅속 깊은 곳에 편안히 묻혀있던 저를 캐내고 녹여 뾰족하게 다듬고 화약을 욱여넣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총알입니다. 항상 총주인의 방아쇠에 절대복종하여 멀리 떨어진 대상의 생명을 효과적으로 빼앗습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살인의 권리는 주어지지 않지요. 그러나, 총기 살인은 빈번하고, 그때마다 저희는 절박함, 분노, 정의와 신념의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2011년 7월 22일. 무척 많은 동료가 동원된 날, 저희 모두는 발사 순간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희가 아무 죄 없는 비무장의 십 대 학생들에게 날아가 꽂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우 성향의 테러범 브레이비크가 아이들을 하나하나 사냥하듯 조준하여 총알을 날렸어요. 노르웨이 우퇴위아 섬 청소년 캠프에서 오후 늦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한 아이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서 어딘가 박혔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의 이름은 빌야르 한센. 뇌간 깊숙한 곳이었지만, 다행히 치명적인 곳은 피한 덕분에 살아남은 저는 그의 머릿속에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그날 저의 많은 동료들은 68명 아이들의 몸속에서 엉엉 울다가 함께 식어갔어요.


총알은 사람을 품어 끌어안지 못합니다. 작고 빠르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어요. 잘해야 치료 과정에서 제거될 뿐이죠. 저는 고통에 빠진 빌야르를 위로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뇌간을 꼭 잡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의 뇌에 쌓여 있었기에, 테러를 겪은 이후 그가 격렬한 감정의 파고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같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Are you OK? I'm Fine. Take care. Thank you. 하며 서로 주고받는 배려의 힘은 그의 뇌에 전달되어 강한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재활의 의지는 뇌신경 세포를 자극하여 빌야르의 신체를 급속도로 회복시켰습니다.

잘못된 곳에 조준된 총알은 아무 데나 쏘는 총알보다 더 위험합니다. 저를 비롯한 브레이비크의 총알은 이민자 배척이라는 그릇된 신념으로 포장되어, 노르웨이 국민 모두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그래서, 법정에서 그에 맞선 빌야르가 가족, 친구, 추억, 꿈,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할 때 저는 머릿속에서 정말 미안하고 아팠습니다. 빌야르가 불편한 몸으로 걸어 눈 쌓인 자연을 마주했을 때, 저는 알았습니다. 그곳의 눈과 구름과 바람도 이민자였습니다. 자연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제각기 다른 이민자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빌야르가 이제 많이 회복되어 저는 곧 수술로 제거됩니다. 저는 그동안 빌야르에게 위험한 존재였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브레이비크 같은 위험인물이 멀리 교도소 독방에 격리되는 것처럼요. 저는 그동안 많은 것을 느끼며 배웠고, 이제 기꺼이 빌야르에게서 떠납니다. 그가 부디 저에게 당했던 고통의 기억을 떨치고, 훌륭한 노르웨이 국민으로 잘 성장하길 빕니다. Take care. Thank you.

사진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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