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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문명이 나를 살렸다

날씨가 추워지면 입는 옷이 점점 두꺼워진다. 오랜 인류 진화의 과정은 추워지면 몸을 긴 털로 뒤덮거나 피부를 더 두껍게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진화는 사람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것발견해 내도록 뇌를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동굴에 살면서 불을 사용하고, 몸을 덮어 추위를 피할 것을 만들어 내면서 아프리카로부터 지구 전체로 퍼져나가 번성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인간이 침팬지와 진화 과정에서 갈라진 것은 대략 6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600만 년 인간의 역사를 1년이라 치면, 문명 생활을 한 6천 년의 시간은 대략 8시간으로 계산된다. 그렇게 면 인간은 거의 1년 내내 생존과 짝짓기에 바탕을 둔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다가, 12월 31일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농경과 정착 생활을 기반으로 한 문명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생활 방식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뇌는 기나긴 원시의 기억과 습성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식량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틈만 나면 몸에 지방을 축적하려 들고, 잘 모르는 것은 위험으로 여겨 일단 회피하며, 집단 속에 있어야 뭔가 편안함을 느낀다. 회사 임원이 될수록 등산에 앞장서는 이유는, 원시 족장이 젊은이들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서 위험한 곳은 어디이고 먹이가 많은 곳은 어디인지 알려주던 행동이 유전자에 저장되어 재연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아침 출근길, 아직 원시의 뇌와 몸을 가진 나는 여의도로 가서 우리 부족과 함께 사냥과 채집의 길을 나선다. 빨리 오래 달리고, 높이 멀리 뛰고, 무거운 것을 들고 던지고, 정확히 맞추고 찌르고, 겨루어 넘어뜨리고 하는 것 중에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1년 역사 중 8시간 문명의 시간이 나를 살렸다.


진화는 항상 진행 중이며 적응은 완벽하지 않다. 항상 스스로 극복하여야 할 것들을 남겨둔다. 내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겨울의 꽁꽁 어는 추위도 그러할 것이다. 일단 옷을 좀 두껍게 입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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