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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Aug 10. 2020

감수성 문제 있어?

길을 걷다가 전동 킥보드가 갑자기 옆을 스쳐 지나갈 때 깜짝깜짝 놀란다. 한강공원 도로에서 자전거를 탈 때나 고속도로를 차로 달릴 때도, 빠른 속도로 갑자기 추월하거나 지그재그 앞지르는 이들이 위협을 준다.


빠른 것들은 보통 안전거리를 두기보다는 앞으로 치고 나갈 생각에 몰두하고, 스스로 유발하는 위험에 무심하다. 달리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빠른지에 대한 감각도 떨어진다. 그래서, 도로의 단속 카메라나 과속 방지턱이 그들에게 속도를 낮춰야 할 때를 알려주어야 한다.

근무하는 사무실이 최근에 높은 층으로 위치를 옮겼다. 40층 넘는 높이에 주변 건물 내려다보니, 아래에 볼 때 차이가 뚜렷하던 건물들의 높이가 비슷해 보인다. 32층이나 27층 건물이나 다들 고만고만하다. 눈높이가 올라가니 높이에 둔감해졌다. 나이에 대한 감각도 그렇다. 오륙십 나이 정도의 사람에게 45살, 42살, 37살 등의 나이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결국 빠르거나 높거나 많은 것들, 대개 비교적 힘 있는 존재가 될수록 주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정작 그들에게 더 요구되는 것인데도 그 모양이라서 감수성 문제가 생긴다.    

유튜브  '토리스토리'

감수성은 흔히 예민하다는 말과 같이 쓰이지만 좀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면, 토끼는 예민하긴 하지만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토끼를 키우는 이의 말에 따르면 토끼는 좀처럼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워낙 약한 동물이라 천적에 들킬까 봐 대가 퇴화되었단다. 대신 청각이 발달하여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키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예민함은 약한 존재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생존의 방식이라서 타고 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감수성은 예민함이라기보다 자기 주변의 대상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라서 경험과 판단을 통해 키워나가는 것이다. 주위의 약한 이들이 예민함으로 신호를 보낼 때, 감수성이 풍부한 이는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문제를 풀어나간다.

국회방송 20.7.28

최근 한 국회의원이 다른 당 의원의 질의에 들어간 '절름발이 정책 수단'이란 말에 대해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임을 지적했다. 당연한 지적이 언론의 보도에 이슈가 되었다. '사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비유적 표현을 가지고 말꼬리 잡는다'느니, '그러면 순수 한글 명칭인 벙어리는 비하하는 말이고, 청각 장애인이라는 한자어는 존중하는 말이냐'는 억지 반응도 있었다. 결국 보통 쓰는 단어 하나 쓴 것 같은 지엽적인 것으로 예민하게 굴었다는 것이다.

감수성 수준이 낮으면 자기도 모르게 막말을 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듣고 자랐을 장애인의 입장에 서보면 금방 아픔이 느껴지는 표현임에도 아랑곳없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이 있다. '선량한'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차별적인 행동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 알려주는 책이다. 선량한 감수성을 위해서는 배움도 필요하다.

선녀와 나무꾼 표지(시공 주니어)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도 선녀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기 된다.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날개옷을 도둑질하여 감춰놓고 선녀의 약점을 잡아 협박한 나무꾼의 행동은 선녀에게 저지른 이기적인 범죄 행위다. 감수성은 상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일이다. 상대가 자기보다 약자일수록 감수성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 등 '감수성'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뭘 그리 예민하게 그러시나' 같은 말을 하는 이도 있지만 예민함은 스스로를 지켜 살아가기 위해 약자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성격이다.

나무 위키 - 감수성(개그콘서트)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감수성의 기준도 따라 변한다. 개그콘서트에 '감수성'이라는 성을 지키는 장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 코너가 있던 시절이 2012년이다. 그 시절 감수성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그럴 수 있었을지라도 이제는 아닌 것들도 많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풍부한 감수성이 성을 지키는 군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 사는 세상은 좀 더 편안한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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