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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Dec 23. 2020

케이타, 파이팅!

요즘 프로 배구 코트를 누비는 어린 외국인 선수 한 명이 있다. 나이는 이제 19살,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2미터 6센티 장신과 점프력을 갖춘 선수, 이름은 노우모리 케이타. 현재 공격 순위 1위로, 어지간히 띄워주는 공은 거의 상대편 코트에 때려 넣는다. 6명 배구에서 외국인 선수는 엄청난 영향력이라서 올해 프로 배구팀 KB손해보험은 이 친구 덕분에 만년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케이타의 또 다른 매력은 플레이에 흥이 넘치는 선수라는 점에 있다. 공격에 성공하면 신난 표정과 온갖 재미있는 세리머니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혹시 공격에 실패하더라도 머쓱한 웃음으로 어지간해서 기죽지 않는다. 경기 시작 전 타 팀 선수를 소개할 때나, 동료가 서브를 넣으러 가는 것처럼 보통 다들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도 홀로 박수 치며 응원을 보낸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팀 분위기가 경기 흐름을 좌우하기에 선수 한 명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은 무척 크다.  

배구만큼 경기 중 세리머니가 잦은 스포츠가 없다. 축구는 골 세리머니가 있고, 야구는 홈런이나 장타를 치고 나서 특유의 동작을 취하지만 그런 상황은 자주 있지 않다. 농구나 핸드볼 같은 경기는 점수는 많이 나는데 시간을 재는 경기라 다들 바쁘다. 골 들어간 후 바로 플레이가 이어져 세리머니 할 틈이 없다. 그에 비해 배구는 25점씩 최소 3세트를 하는 동안 득점 후 서브를 준비하는 시간이 있어서, 수십 차례 세리머니를 펼칠 시간이 주어진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선수들은 서로 환호하고 격려하거나 미안함과 위로를 보내는 시간을 갖는다.   

배구는 간단해 보이지만 특이한 점이 많은 스포츠다. 테니스나 탁구처럼 네트를 놓고 벌이는 개인 경기를 단체 경기로 키워놓은 모양새인데, 최대 세 번 터치로 공을 상대편 코트로 넘겨야 한다. 공을 받고, 띄워주고, 때리는 동작 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다음 플레이가 힘들어진다. 손으로 하는 경기지만 머리나 발을 사용하거나 몸에 맞아도 정상 플레이로 인정된다. 금 밖으로 공이 나가도 바닥에만 닿지 않으면 펜스나 책상을 뛰어넘거나 대기 선수들 사이에 뛰어들어 건져내도 괜찮아서, 공을 살리려는 선수들 파이팅이 대단하다. 범실 하나에 승부가 바뀌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범실이 한 경기당 수십 번 나오고, 그래도 아랑곳없이 이길 수 있는 경기이기도 하다.  

삶은 흔히 스포츠에 비유되곤 한다. 구기 스포츠를 크게 둘로 나누면, 정해진 시간 내에 어느 편이 점수를 많이 내는가 하는 경기와, 서로 한점 한점 점수를 쌓아 누가 정해진 점수에 빨리 도달하는지 겨루는 경기가 있다. 정해진 시간 동안 한 점이라도 더 얻으려 마지막까지 힘껏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삶도 좋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점수를 쌓아가는 배구 같은 삶에 더 끌린다. 범실을 하더라도 미안한 몸짓과 격려로 이해되고, 점수 낼 때마다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 리시브나 토스가 어설퍼도 어떻게든 마무리하려고 몸을 던져 뛰어오르고, 혹시 손으로 안 되면 발이라도 갖다 대며 노력하는 경기라서 좋다.   

삶이라는 경기는 배구 경기처럼 실수투성이다. 네트를 건드리기도 하고, 서브는 금 밖으로 자주 나가고, 리시브한 공은 엉뚱하게 튀어 나간다. 이리저리 신묘하게 날아오는 공을 겨우겨우 받다 보면, 혹은 잘 때렸다 생각한 공이 블로킹에 막혀 다시 넘어와 떨어지면, 너무 지쳐 누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어느새 달려와서 세리머니를 펼치는 선수가 있으면 좋겠다. 삶을 즐기고 기쁘게 춤추며 '괜찮아 어때' 하며 복잡한 마음을 단순하게 밝혀주는 그런 이가 마음속에 있으면 좋겠다.

삶은 승리도 패배도 없는 운동 경기와 같다. 그냥 공을 주고받으며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가는 시간이다. 그 안을 가만히 보면 배구 경기처럼 세리머니가 필요한 자잘한 순간이 흘러간다. 자신에게나 주위 사람에게나 축하나 격려, 위로를 보내는 일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음 서브를 준비할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때마다 잠시라도 케이타 선수처럼 즐겁게 환호하고 응원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케이타 선수를 바라보며 힘을 내고, 또 그를 열렬히 응원한다.  


케이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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