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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Dec 31. 2020

어둠의 가치

출근을 조금 일찍 하는 편이다. 출근길에 지하철역과 연결된 커다란 상점가를 돌아 사무실로 올라오곤 한다. 대부분 상점들은 컴컴한 채 닫혀있지만, 일찍 문 여는 카페는 종업원들이 커피를 추출할 준비에 분주하다.


사무실에서 올라와 보면 밖은 아직 어둡다. 어두운 창 밖 풍경은 밝은 사무실 모습이 비쳐 잘 보이지 않는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을 잘 볼 수 없다.  

퇴근할 때는 보통 회사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향한다. 어두운 저녁이라 통유리로 되어있는 주변 식당과 상점들 불빛이 환하게 거리를 비춘다. 어두운 곳에 있으면 밝은 곳은 유난히 눈에 띈다. 특히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면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밤에 바라본 어떤 집, 베짱이가 눈 쌓인 겨울 들여다보았던 개미네 집이 그렇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담겨있는 빛은 따뜻하고 외로운 어둠은 더 춥게 느껴진다.     

자신의 생활이 밝으면 다른 의 어둠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마음의 창에 비친 주변 모습이 밖의 어둠을 가리기 때문이다. 어둠은 그 안에 몸을 담가야 비로소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섣불리 너의 어둠을 이해한다고, 내가 너를 비춰주겠다고 말할 수 없다. 내면의 등을 끄고 들여다보아야 천천히 보이는 길을 같이 찾아보는 정도가 좋겠다. 어둠은 솔직하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밝을 때 보다 좀 더 마음을 연다. 밝은 표정과 웃음 보다 어두운 슬픔과 눈물은 더 꾸미기 어렵다.


세상 본질적인 많은 것은 어둠 속에 있다. 나무는 깊은 어둠 속 뿌리에서 성장올리고, 편안한 어둠은 태아를 키우며 씨앗을 발아시킨다. 우주 사물의 대부분은 어둠 속에 존재하며, 심장은 한 평생 어둠 속에서 뛰며 우리 몸을 살리고 있다. '어둡다'는 말은 세상 물정이나 이치에 어둡다거나 표정이 어둡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잘 쓰이지만 어둠은 밝음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사람의 감각기관 중에서는 눈과 입만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다. 그것은, 가끔 눈을 감고 말 없이 조용히 어둠을 느껴보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제 올해 마지막 태양이 지고 난 후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새해에는 찾아오는 어둠을 피하기보다 잘 어울려 지내며, 가끔 마음의 불을 끄고 주변의 어둠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다. 어둠과 밝음이 반복되는 세상 속에서, 어둠의 가치를 잘 느끼고 이용하는 한 해를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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