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Jul 01. 2021

런웨이에서는 당당하게

아침 일찍 회사 근처 커피숍 문 여는 시간에 들러 한산한 2층 창가에서 가끔 커피를 마신. 창밖을  시간이 지날수록 출근하는 이들점점 많아지는데, 옷차림도 걸음걸이도 제각각이다. 정장부터 캐주얼까지, 어떤 이는 바쁜 걸음, 또 어떤 이는 천천히, 터벅터벅, 사뿐사뿐, 성큼성큼... 제각기 길을 따라 걷는 모습이 마치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걸어가는 모델들 같아 보인. 물론 모델들처럼 당당하고 시크한 포즈를 취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아침 일찍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그렇듯 뚜벅뚜벅 갈 길을 찾아 회사로 향한다.

아침 이른 시간 '출근길 뷰' 커피숍 자리

어찌 보면 출근길도 런웨이, 퇴근길도 런웨이, 회사일도, 집안일 런웨이... 사는 일은 여러 런웨이에 서는 일이다. 모델이 그때그때 다른 옷을 입고 런웨이에 오르듯, 매 순간 다른 역할의 옷을 갈아입고 삶의 런웨이를 걸어왔다. 어릴 땐 주로 아들, 동생, 친구, 좀 커서는 직장 선후배, 동료, 남편, 아빠라는 ... 새 디자인의 옷은 별로 선보이지도 못하고 매번 입던 옷 비슷하게 입고 그대로 런웨이에 나오지만, 다만 애매하게 옷을 겹쳐 입지는 말아야지, 걸음만큼은 제대로 걸어야지 한다.


델의 워킹은 마치 옷이 걷는  같아 보이도록 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한다. 몸의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어 옷이 돋보이도록, 그들은 정돈된 걸음으로 흔들림 없이 런웨이를 걷는다. 삶의 런웨이에서 내가 입는 여러 역할도 그렇게 어울리면 좋겠다. 옷들이 돋보이정도는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보이기만 해도 좋겠다. 역할의 옷이 어색하면 시선이 흐트러지고 몸이 기우뚱거리는 순간온다. 삶의 런웨이에서 나는 가끔 당황스럽다.

아주 오래전에 런웨이에 서본 적이 있다. 대학 시절 전통춤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동아리 지도교수께서 한복 연구가인 지인이 여는 패션쇼에 보조 출연을 부탁하셨다. 옛 벽화나 민화를 통해 전해지는 전통 복식을 현대에 재현하여 선보이는 뜻깊은 행사였다. 그중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은 말 타고 활 쏘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 속 무사를 현하는 것이었다. 실제 말을 동원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당다가 다가다가~' 하는 장구 반주와 춤으로 군무 콘티를 완성했다. (아. 우리가 싸이 말춤의 시조였던가...)

시내 호텔에서 열린 패션쇼 날, 많은 사람 앞에서 실수라도 할까 봐 엄청 긴장했다. 패션쇼 출연진 중에 배우 유인촌도 있었다. 사전 리허설 때 보이지 않더니 행사 얼마 전에 도착했다. "아. 그래 이거 이렇게 걸어 나가면 되는 건가?" 임금 역할이었는데, 연출과 얘기를 주고받더니 능숙하게 왕으로 변신하여 무대를 휘저었다.  여유롭 당당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작 나는 '당다가 다가다가~' 반주에 잘 달려 나가긴 했는데, 런웨이 밝은 조명 아래에눈이 부셔 스텝이 좀 꼬였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원래 사냥이란 실내에서 하는게 아니다.


삶의 런웨이에서는 당당해야 다. 무대 뒤에서 히 옷을 갈아입었더라도 흐트러짐 없이, 두근두근 떨리 옷이 조금 부자연스럽더라도 뚜벅뚜벅, 아랫배에 힘주고, 몸을 쭉 펴고, 정면시하, 자신감 있게... 누구는 당당하다고, 누구는 도도하거나 뻔뻔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어차피 모두 다 좋아할 수는 없고, 모든 일을 다 잘 해낼 수도 없다. 연연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런웨이를 걸으면 된다. 

영화 '크루엘라' 중에서 (사진:네이버 영화)

커피숍에 있는 동안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음악이 켜지고 무대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옷 갈아입고 런웨이로 나갈 시간이다.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고 조금은 자뻑스러워도 괜찮다. 삶은 원래 뻔하기보다는 뻔뻔하게, 당하기보다는 당당하게 사는 것이다. 오늘도 힘차게 때로는 능청스럽게 런웨이를 걸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시속 30킬로미터와 초속 5센티미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