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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l 21. 2021

야구는 너무해

삶이라면 너무한 야구의 규칙 6가지

야구를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보는 편이다. 비록 응원하는 야구팀은 보살의 마음 아니고서정신 건강에 유해한 경기력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그 팀을 아낀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참 규칙이 독특한 경기다. 공격과 수비가 매회 번갈아가며 이루어지고, 경기에 참여 중인 선수인데 더그아웃에서 뭘 먹고 앉아있는 경기가 야구다. 복잡한 규칙 속에 다양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 야구는 그래서 그런지 스포츠 중에서 특히 인생에 자주 비유되곤 하는데, 그렇게 보면 좀 너무한 것이 아닌가 느껴지는 야구의 특징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았다.


1. 선수가 경기 중 죽는 경기

선수들이 죽는다. 공을 배트에 못 맞혀서 죽고, 공이 땅에 닿기 전에 잡혀서 죽고, 공보다 늦게 뛰거나, 공에 몸이 닿아서 죽는다. 야구에서는 작은 공 하나 때문에 살고 죽는다는 표현을 쓴다. 1사, 2사하며 죽을 사(死) 자를 써서 헤아리며 병살, 보살 등에서는 죽일 살(殺) 자를 쓴다. 경기 내내 중계하는 이는 살아나갔다거나 죽었다거나 하며 열을 올린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퇴장이나 패배라는 말은 있어도 죽는다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도 '죽을뻔했다' 라거나 '죽을래?'라는 말을 생활 속에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타석에 등장했다가 작은 공 하나 잘못 다루고 공보다 조금 늦게 뛰었다고 바로 죽음의 길로 내모는, 야는 좀 너무하다 싶다.


2. 끝장을 보아야 끝난다

스포츠는 보통 점수와 시간의 함수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점수를 정해놓고 그 점수에 빨리 도달하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점수를 많이 내면 이긴다. 야구는 그와 달리 9회의 횟수만 정해놓았을 뿐, 무제한의 점수와 시간이 기본이다. 적어도 한 팀의 선수들이 27번 '죽어야' 경기가 끝난다. 지는 팀이 정신 탈탈 털리도록 경기가 기울어도 예외 없다. 아마추어 야구는 점수 차에 따라 콜드게임으로 끝나기도 하지만(너무 썰렁한 경기라 Cold 인가했더니, 경기 중단 선언이라 Called) 프로 경기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 투수가 다 털려 야수가 투수로 등장하는 눈물겨운 광경도 본다. 살다가 일이 너무 일이 꼬여 힘들면 어느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숨 돌릴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데, KO도 기권도 없이 무제한의 털림을 인정하는, 야구는 좀 너무하다 싶다.

3. 실수를 기록에 남긴다

스포츠는 보통 좋은 플레이와 실수가 섞여 승부가 가려진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에 서투른 플레이가 있어도 보통 경기의 일부분으로 넘기지만, 야구는 유독 실책(Error) 콕 찍어서 기록으로 남긴다. 선수 한 명의 실수를 일일이 영문 E라는 표시로 전광판에 띄워놓기도 하고 실책 개수는 개인 기록으로 관리된다. 안타성 타구를 잡아낸 멋진 수비 횟수는 모른 체하고 유독 실수만 기록하여 어떤 선수에겐 만회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실수가 없으면 좋겠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작은 공을 잡아내기는 항상 어렵다. 살면서 누구의 실수에 대해 주목하고 지적하는 일은 잘한 일을 찾아 칭찬하는 것보다 항상 쉽다. 때로 실수라도 그냥 덮어두고 가면 좋은 일도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 실책에 유독 주목하며 너그럽지 못한, 야구는 좀 너무하다 싶다.


4. 약점을 집요하게 노린다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는 타자가 어떤 볼을 어디로 던지면 못 치는지 미리 파악하여 그곳에 승부구를 뿌린다. 수비수는 타자의 공이 주로 향하는 방향을 막아서서 길목을 지킨다. 야구에서 상대 팀을 이기려면 그렇게 선수 개인의 약점을 노려야 한다. 훌륭한 기량의 선수도 한번 약점을 잡히면 계속 약점을 공격당하며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는 것이 야구다. 물론 약점을 극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잘하는 일 찾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약점만 집요하게 공격당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다. 약점이 좀 있더라도 장점으로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 세상 일이다. 모든 스포츠가 조금씩은 그렇다고 하지만 약점을 집요하게 노려야 이기는, 야구는 좀 너무하다 싶다.

5.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스포츠는 보통 경기장 안에 있는 선수들과 심판이 알아서 경기를 진행한다. 감독과 코치는 작전 시간을 요청하거나 경기장 밖에서 듣든 말든 고함을 치며 격려하는 정도다. 그런데 야구는 다르다. 코치와 감독은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손짓으로 지시를 내린다. 선수들은 타석에 들어섰다가도 계속 3루 옆에 서있는 코치나 더그아웃의 감독 눈치를 본다. 그들은 가끔 경기장 안으로 진입하기도 하는데, 그게 야구에서 코치와 감독도 선수처럼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유다. 그 와중에 약자에게 희생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야구에는 희생(Sacrifice)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기꺼이 죽는다기 보다는 보통 기록이 좋지 않은 선수가 그 역할을 맡는다. 살면서 눈치 보고 지시받으며 사는 것도, 약하다고 희생을 강요받는 일도 좋은 일은 아니다. 비록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선수들이 알아서 하도록 그냥 믿고 내버려 두지 않는, 야구는 좀 너무하다 싶다.


6. 집 밖에 나오는 순간 무조건 힘들다

야구에서 안타를 치건 볼넷을 골랐건 일단 1루에 나갔다고 하자. 일단 2루와 3루를 거쳐 다시 집(Home)으로 돌아와야 점수가 되고 그렇지 못하고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그 과정이 눈물겹다. 집으로 빨리 돌아가려면 베이스에서 좀 떨어져 뛸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온갖 견제가 들어온다. 베이스를 벗어난 선수가 경기장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야구다. 공을 든 손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다시 돌아가기 전에 공이 조금만 먼저 도착해도 죽는다. 가끔 베이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사냥꾼에 몰린 토끼 같은 신세가 되는 선수들을 본다. 집은 안식처지만 그렇다고 집 밖의 삶이 항상 불안하고 힘들어서는 안 되며 집에는 원하면 쉽게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집 밖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참 어렵고, 길에서 그냥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은, 야구는 좀 너무하다 싶다.

야구의 규칙에 대해 삶에 빗대어 이러쿵저러쿵 글을 썼지만 나는 야구가 좋다. 야구에서는 죽었다가도 금방 다음 수비에 다시 살아나서 뛰고, 멀쩡하게 다시 타석에 들어서고 또 들어선다. 어젯밤 그렇게 끝내기 승리에 환호했더라도 다음 날이 되면 깨끗이 과거를 잊고 다시 현재에 집중한다. 패배의 분통함에 가슴을 쳤어도 깨끗이 잊고 달리고 또 달린다. 현재에 집중하는 힘, 그것이 야구가 가진 매력이다. 그래서 오늘도 야구를 보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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