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스포츠처럼 규칙에 따라 기록이 측정되어 뭔가 진전이 보이는 일도 아니고, 음악처럼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며 직접 느낄 수 있는 반응도 없으며, 영화처럼 여러 배우나 스태프들과 한자리에 모여 작업할 일조차 없다. 직업이라지만 다른 자영업과 달리 초기 자본이 꽤 들어간다거나 어딘가 조직에 합류하여 연봉을 받는 일도 아니라서, 잘 안되면 그냥 혼자 살짝 망하는 일이다.
대회에 출전하여 승부에서 이겨야 잘 되는 일도, 전시회같이 작품을 보여주는 행사를 열어야 하는 일도, 시사회를 하거나 무대 인사를 돌며 팬들을 만나야 할 일도 없다. 좋은 악기나 재료, 멋진 공간, 특수 기술도 소용없이 그냥 노트북이나 글 쓸 자리 정도 마련하여 앉아 쓰면 된다. 인기를 얻는다고 책 값이 그림 값처럼 치솟거나, 북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팬들이 몰려들어 응원봉을 흔들거나 떼창을 해주지도 않는다.
문자라는 것 자체가 특별해서 그런 건가 싶다. 시각 자극이 곧장 뇌리로 전달되는 그림이나 영화라거나 한번 귀에 꽂히면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되는 음악이나 노래와 달리, 읽는다는 일은 문자에서 상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일이기에 접근도 소비도 쉽지 않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은 혼자 문자를 이리저리 배열하여 공감의 손을 내미는 지극히 고독한 작업이다.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을 '작가'라고 부른다.
요즘 주위에서 한강 작가에 관해 묻는다. 그래도 내가 에세이 책을 한 권 냈다고 '같은'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 사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고 독서 폭도 좁은 편이라서 한강 작가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이제야 주문하고 배송일자가 자꾸 늦어져서 기다리는 중이다. 작가는 노벨상 소식을 듣고 아들과 조촐히 축하하고 나서는 세상 곳곳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어 조용히 있겠다며 인터뷰도 거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변함없이 일상에서 60세까지 세 편 정도 소설을 더 완성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하는데 말투가 조곤조곤 부드럽고 잔잔하지만 또박또박하고 분명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도 그처럼 어떤 일을, 그리고 말을 조곤조곤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한다고 굳이 내세우지 않고도 미소를 띠며 조곤조곤 자기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잘하고 못하는 기준이 자기 내면에 있더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삶이되면 좋겠다. 말과 글은 아무리 꾸며내려 해도 그 사람이 그냥 들여다보이는 경우가 많다. 비록 고독하고 좀 더 힘들더라도 고요하지만 조곤조곤하게 좋은 글을 쓰는 작가처럼 사는 일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