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내는 걱정 인형

by 그래도

아내는 걱정이 많다. 가능성이 낮거나 신경 써봐야 별 도움이 안 되는 일에도 그렇다. 걱정하는 내용도 자기 자신보다는 사회나 국가, 가족들 상황이나 미래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침에 일어을 때 할 얘기가 있다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며 "그......" 하고 말을 시작면 나는 당황한다. 새벽녘에 생각나서 그럴 것이라고 이해를 하려 해도 차분한 답변이 힘든 시간이다. 걱정하며 조심하는 것도 필요하면서 그때그때 풀어가면 어떠냐고, 걱정하다 보면 계속 새로운 걱정을 찾게 될 것이 아니냐고 하면, 아내는 자기도 그게 걱정만 하며 살게 될까 걱정이라고 걱정한다.


조심해서 와, 조심히 들어가, 건강 조심해. 우리는 은연중 조심이라는 말을 인사말로 많이 건네며 살아간다. 조심하지 않으면 뭔가 일이라도 날 듯이 걱정의 마음을 건넨다. 어릴 적 엄마는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항상 차 조심하라고 덧붙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조심(操心)'이라는 한자어는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했다. 약하고 귀한 존재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면서도 너무 꼭 쥐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마음을 가지는 것. 조심을 실천하는 일, 걱정을 조절하는 일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걱정은 인류 공통으로 삶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마야 원주민들은 걱정으로 잠 못 드는 이들을 위해 걱정 인형을 만들었다. 나무에 헝겊과 털실을 감아 만든 작은 인형을 베개 아래에 깔고 자면 그 인형이 걱정을 대신해 주는 덕에 사람들은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뜻로 만들었다. 인형에 걱정을 맡긴다는 일은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걱정은 삶에서 덜어내도 되는 일이라는 것, 그래도 누군가 하기는 해야 한다는 것. 아내가 걱정하는 말을 들어 보면 조금 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아내가 여러 걱정을 담당해 주니까 나와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아내는 우리 집 걱정 인형 셈이다.


어릴 때 가족이 다 같이 외출할 일이 있으면 엄마는 항상 늦었다. 나가야 할 시간에 '잠깐만 있어봐' 하며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 '좀 미리 준비하지' 하며 나는 답답해하곤 했다. 그러다가 나도 아이들이 생기고 외출을 준비하다 보니 알았다. 엄마는 나갈 때 갖고 가야 할 준비물, 식구들 옷이나 그런 거 다 챙기고 집안 정리도 해놓고 그런 후에 나갈 채비를 다 보니 늦었던 것이다. 내 준비만 하느라 몰랐던 나는 거울 앞 엄마의 뒷모습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지금 정 인형 역할을 하고 있는 아내 보고 뭘 그런 걸 다 걱정하냐고 답답해하지만 조금씩 알게 된다. 누군가에 대한 걱정은 더 많이 챙길수록 보이는 사랑의 뒷모습이라는 것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루가 있던 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