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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출근길의 마음

by 그래도

오랜만에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열심히 운동을 했더니 몸이 힘들었나 보다. 책을 읽다 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핸드폰 알람에 눈을 뜨기 직전 비몽사몽의 시간.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몸이 무거운 것을 보니 '혹시 토요일인가?' 하다가 바로 정신이 들며 수요일 아침임을 깨닫고 조금 우울해졌다.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가서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어언 30년 가까이 매일 꼬박꼬박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는 내 생활도 참 대단하네.


욕실에서 나와 주말에 새로 산 바지를 꺼내 입었다. 매장에서 다른 사이즈를 입어보며 한참 고민했다. 통이 딱 좋은 바지는 허리에 약간 조이는 듯한 느낌이고, 허리가 편한 바지는 모양이 벙벙해 보였다. '그래, 약간 조이더라도 간지 나는 바지를 사자. 뱃살은 내가 조금 빼면 되지. 이걸 계기로 다이어트도 해보자고.' 계산하고 나서 그동안 이런 생각으로 샀다가 한 계절 입고 처박아놓은 수많은 옷들이 떠올랐다. 조금 힘들게 단추를 채웠다. 더 조일 수 없는 허리띠를 끼워 넣으며 조금 더 우울해졌다.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차체에 물방울이 점점이 맺혀있다. '밤새 비가 내렸나 보네.' 올록볼록 맺힌 물방울에 아파트 전경이 조각조각 나누어 비친다. '마음에도 비가 내리면 조각나 부서져 담기는 풍경들이 있겠지. 그 풍경을 살피면 전부가 되려나.' 이 어떤 모양이든 마르기 전에 살펴보며 촉촉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이번에 첫 책을 낸 사진작가를 만났다. 그는 요즘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의 일부분을 찍고 있다고 했다. 내가 인스타에서 본 알 수 없는 형체의 사진들이 그런 것이었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문득 떠오르는 단상들이 있다. 그럴 때면 카톡에 메모했다가 글감으로 쓰곤 했는데 바로 쓰지 않으면 나중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직도 카톡에는 많은 문장들이 미제 사건의 흔적처럼 남아있다. 나도 그때그때 짧게라도 글을 써서 인스타에 남겨보기로 결심했다.


차를 타고 나섰다. 스마트폰을 연결하니 알고리즘을 따라 노래가 흘러나왔다. 괜찮았다. 보통은 경제 유튜브 방송을 들으며 출근하는데 오늘은 그냥 노래를 들으며 가고 싶었다. 우울한 기분이 풀리려나 했다. 오늘은 그냥 차선도 바꾸지 않고 맨 우측 차선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노래가 계속 흘렀다.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린 날의 추억일 뿐. 상처라 믿었던 것들은 새로운 삶의 양분일 뿐. 미련이라 믿었던 것들은 피지 못한 필연일 뿐. 이름이라 믿었던 것들은 너의 작은 조각일 뿐. 조각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쩌면 너의 전부. 그 전부를 건넨 너를 사랑이라 믿었을 뿐"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Big Naughty와 악뮤의 이수현이 같이 부르는 노래.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보고 가사를 새겨들으니 기분이 다시 우울해졌다. 우울은 심해어가 깊고 컴컴한 바닷속을 유영하듯 마음의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떠오르는 감정이다. 삶의 무게가 짓누르는 깊은 마음속. 예술가들은 대개 우울에 친숙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가끔 그 안에서 빛나는 마음 조각을 발견하면 그것을 글로, 그림과 음악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아닐까.


우울의 '우'자가 비를 뜻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가 울 듯이 내리는 것이 우울일까. 우울을 그냥 비처럼 생각하면 될까. 언젠가 그치는 마음의 비. 마음이 그로 인해 촉촉해지고 알알이 주변의 사물을 비추는 것. 주변에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조각, 그 조각들을 사랑이라 믿어 버리는 것. 들여다보면 뭔가 새록새록 발견하겠지. 그러면 잘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운전하면서도 바지가 조이기 시작하는데 이를 어쩌지 점심을 먹지 말아야 하나 생각하는 중에 우울을 건너 회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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