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연을 생각하는 마음

by 그래도

여름휴가철이 지나가니 만나는 사람마다 "휴가는 잘 다녀오셨어요?"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강원도 평창에 갈 거라고 하니 전에 다녀왔다는 이는 "거기는 여름에도 서늘해요." 하며 겉옷을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말이에요?" 설마 요즘 같은 무더위에 그 정도까지 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콘도에 에어컨이 거실 천장에만 달려 있다고 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라 그렇다 했다. 최근 후기를 조회해 보았다. 콘도 안에 근처 산 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다고 했다. '근데 방은 너무 더워 거실 에어컨 풀로 켜고 가족들 모두 그 아래에서 이불 펴고 잤어요.'라는 후기도 발견하고 말았다.

그곳은 서늘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서울과는 공기가 확연히 달랐다. 숲이 우거진 데다가 해발 700미터라는 높은 고도 덕분인 듯했다. 짐을 풀고 1시간 정도 차를 몰고 강릉으로 갔다. 정동진 바닷길을 걷고 근처 해변에 들렀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회를 뜨고 김밥을 사서 나왔더니 이미 어둠이 꽤 내렸다. 내비게이션을 켰다. 돌아가는 길로 통행료가 없는 데다 올 때보다 8km 정도 짧은 길을 추천했다.


가다 보니 점점 가로등이 사라지며 점차 어두워지며 오고 가는 차들도 뜸해졌다. '길이 왜 이러지.' 하는데 구불구불 오르막길로 들어서고 나서야 머리를 스치는 길이 있었다. '대관령 옛길'. 20여 년 전 대관령에 터널이 뚫리기 전에 다니던 길이다. 우리는 한밤중 졸지에 대관령을 넘고 있었 것이다. 내비가 원망스러웠다.


고라니가 갑자기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어두운 길을 좌우로 핸들을 꺾어가며 한참 올라갔다. 길 옆으로 바람에 천천히 도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나타났다. '이걸 가까이서 보네.' 마침내 대관령 정. 내려가는 길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평창 시가지가 나타났다. '이래서 평창이 해발 700미터 높이구나.' 해발이 바다와 비교한 높이라는 것을 강릉에서 대관령을 넘으며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1,458m 높이의 산이라 기온이 20도 언저리로 떨어졌다. 챙겨 온 겉옷을 입고 '천년주목숲길' 코스를 산책했다. 수령 천 년이 넘는 주목들은 속이 비어있음에도 푸른 잎을 피우며 울창했다. 주목을 따라 꾸며진 데크길을 걷다가 수령이 1,800년이라는 '아버지 왕주목'이라는 주목 앞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참매미가 웽웽거리며 울고 있었다. 딸이 말을 꺼냈다. "여기 참 좋다. 혹시 나중에 우리가 매미로 다시 태어나면 아버지 왕주목에서 다시 만나는 게 어때?" 지상에서 매미의 짧은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눈 터라 매미로 환생한다는 설정이 달갑지는 않았으나, 혹시 그렇게 되면 꼭 그러자 하며 덧붙였다. "여기까지 날아 올라오려면 되게 힘찬 매미로 태어나야겠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가 전생에 사이좋은 매미였다면. 그러다 헤어지면서 어떻게든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이라면. 그렇게 소원을 이뤄 아빠딸로 만난 사이라면.' 딸과 그 얘기를 하며 그러면 정말 대단한 인연이라며 웃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요양병원에 계셨다.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안타까운 시간에 마음으로 이별을 준비할 때, 다음 생이 있다면 어머니가 내 아들이나 딸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만큼은 못하더라도 나도 많이 사랑하며 꼭 잘 돌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삶에서 인연을 맺은 많은 이들이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혹시 전생에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현생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갑자기 구불구불한 길이 나타나더라도 믿고 그냥 함께 가는 것. 그러다가 높은 곳에 같이 오르기도 하는 것. 가끔은 다음 생에서도 우리 다시 만나자고 얘기하는 것. 인연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여행을 다녀온 지 며칠 지나 딸에게 물었다. "우리 다음 생에 만나기로 한 산이 무슨 산인지 알아?" "아 무슨 산이더라? 태백산이던가?" "나무는 무슨 나무인지 기억나?" "글쎄 무슨 아버지왕나무인가 그랬는데..." 이래서야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생각도 했지만, 다음 생에 만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번 생에 아빠와 자식의 인연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확률인지, 그래서 그 인연이 지금 이 순간에 얼마나 소중한지 가끔 되새기는 마음이면 되었지 싶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느 출근길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