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화를 샀다. 러닝을 가끔 하는 아내가 신어 보면 완전 다르다며 권해서다. 처음엔 "운동화도 멀쩡한데, 뭘." 하다가 주말에 아내와 함께 신발 편집샵에 들렀다. 기능과 쿠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인 각종 러닝화들이 가득했다. 초보자에 적당하다는 조금 저렴한 신발을 골랐다. 운동화보다 폭신한 느낌에 어색하기도 했지만 달리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러닝화 사고 나서 달리러 나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아내는 신발도 장만한 김에 짧은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는 게 어떤가 물었다. 무심코 그러자고 답하고 나니 내게 예약해야 하는 숙제가 떨어졌다.
요즘 러닝 인기가 많다더니 서울에서 주말에 주로 열리는 큰 대회들은 이미 모집이 대부분 마감되어 있었다. 갈 수 있는 장소와 일정을 정해놓고 코스와 참가비를 검색하다가 아직 접수 중인 마라톤을 발견했다. '구로구청장배 치킨 마라톤대회'. 영화 '치킨런'이 떠올랐다. 5km 코스가 있고 기록 측정이 되는 점이 좋았고 셔츠 기념품이 없어 참가비도 저렴했는데, 완주 후 간식으로 치킨을 제공한다고 했다.
마라톤 날이 되었다. 안양천변을 달리고 돌아오는 소규모 대회였지만 참가자들이 제법 많았고 경기에 필요한 시설들도 골고루 갖춰있었다. 여러 명 단체로 참가하는 팀도 꽤 있었는데 10km 코스 배번을 달고 몸을 풀고 있는 날렵한 몸매들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어느덧 출발 시간이 되어 참가 선수 다 같이 뛰어 나갔다. 여럿이 같이 속력을 올리며 뛰는 기분이 상쾌했고 이것이 마라톤의 묘미구나 생각하며 조금 무리해 달렸다.
역시 새 러닝화를 신었다고 몸도 새것이 된 것은 아니었다. 구청 행사라고 구청장, 국회의원 같은 내빈들 축사하느라 해가 높이 떠서 그런지, 초반 오버 페이스를 해서 그런지, 원래 저질 체력이기 때문인지 2.5km 반환점을 돌기 전에 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반환점 급수대에서 물 한 컵 입에 적신 후 나머지는 이제 정신력으로 버티자 다짐하며 뛰었다.
결승점까지 1km 정도 남았을까. 자원봉사 옷을 입은 분이 갈림길에서 코스를 안내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뛰는 나에게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자, 좀 더 힘내세요!" 외치며 골인 지점 방향을 안내봉으로 가리켰다. 칠십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저 분 보다는 내가 젊구나. 저 분은 어떻든 뛰는 내가 부러울 수도 있겠네. 마치 내가 10km를 너끈히 달리는 날렵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그래 이 정도 건강하다는 것만 해도 어디야.'생각하며 힘을 짜내어 결승점으로 뛰어 들어왔다.
'남 부럽지 않게'라는 말이 있다.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굳이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말이다. 내가 좋으면 그만인데, 왜 남을 신경 쓸까? 누구든 원하는 것을 다 누리고 살 수는 없으니 부러워하자면 하루를 부러워하면서 채울 수도 있겠다. SNS에 온갖 주변 사람들의 정보가 보이니 남 부럽지 않게 살기는 어려운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남과 비교해서 부러워하기 보다 그냥 내 자신에 더 집중하면 마라톤 결승점으로 뛰어들 듯 행복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젊고 잘 뛰는 청년들을 부러워했다가 나이 많은 어르신을 보고 힘을 받았던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간식으로 받은 음료수를 마시며 치킨을 한 조각씩 먹기 시작했다. 늦여름 오전 안양천변. 구름이 점점이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최선은 우리의 권리... 감사만이 행복의 열쇠" 그룹 '들국화'의 멤버 최성원은 '행복의 열쇠'에서 그렇게 노래했다. 비교를 굳이 한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정도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주위 사람들과 잘 지냈는지,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는지. 새운동화 신고 마라톤 헉헉댔지만 완주하고 나서 그늘에 앉아 치킨과 음료수 먹으며 무엇인가 부럽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던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