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였다. 강원도 가족 여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기로 했다. 여행지 근처를 검색해서 삼척의 어느 바닷가에 있는 업체를 예약했다. 전문가와 같이 타고 뒤에서 조정도 다 해준다고 했지만, 우리는 조금 긴장되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안전 교육 후에 점프슈트로 갈아입고 산으로 향했다. 업체의 커다란 밴은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좁은 길을 부붕부붕 큰 소리를 내며 거칠게 올라갔다. 손잡이를 꼭 움켜쥐고 있어도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런 길을 다시 어떻게 내려가나 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는 패러글라이딩으로 날아내려 갈 예정이었다. 참 다행이었다.
산 정상 이륙장에 도착했다. 탁 트인 눈앞으로 푸른 하늘과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기념사진 촬영 후에 안전 장비를 확인하고 한 명씩 날아오를 채비를 했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달려요 달려." 소리에 따라 우다다다 뛰다 보니 갑자기 몸이 슈우웅하고 떠올랐다. 무중력 상태가 이런 느낌일까?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아래에 산과 바다를 두고 몸이 떠 있었다. 조금 신이 나서 우와우와 소리를 질렀다. 비행시간은 길지 않았다. 바다 위로 한 바퀴 크게 돌고 나서 천천히 모래사장 위로 착륙했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삶에 대해 생각했다. 유한한 삶의 어느 곳부터는 서서히 내리막이 시작된다. 나이는 계속 올라가지만 삶의 무엇도 끝없이 올라가는 것은 없다. 살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도 이제 꺾이는 건가.' 체력, 기억력이나 사회에서 누리는 지위 같은 것. 다만 울퉁불퉁했던 길로 돌아 내려가지 않으면 좋겠다. 내려가는 코스는 어떻게 내려가든 간에 오를 때보다 속도는 조금 빠르다. 회전 관람차를 탈 때도, 등산에서도 그랬다. 정점에 도달하고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삶에서도 이처럼 내려오는 내 모습이 조금 멋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멋진 어른을 꿈꾸어 본다. 올라온 삶을 조망하며 멋지게 유영하며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최근 읽은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 주인공의 외삼촌은 사십 년을 철도원으로 지냈다. 은퇴한 후에도 그는 그 일 없이 살 수 없어서 정원에 레일과 열차, 선로 변경 장치를 설치해 놓고 마을 사람들과 즐기며 지낸다. 삼십오 년째 폐지 압축일을 하는 주인공 역시 그 기계를 중고로 들여놓고 집에서 폐지를 압축하며 사는 노후를 꿈꾼다.
그 정도로 일을 사랑하지 못해서 그럴까? 나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어떤 일을 그토록 지속하게 만드는 습관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하던 일만 계속하는 삶에 의미를 찾고 즐기며 살다가는 제대로 어른답게 살아보지도 못한 채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계속 높은 곳에 오르려 하기보다는 적당한 높이에서 좋은 영향력을 베풀며 서서히 내려오는 멋진 어른이고 싶다. 그렇게 내 남은 삶은 패러글라이딩 타고 내려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멋지게 뛰어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우다다다 힘껏 뛰어야 한다. 그래야 바닥에 깔려있던 날개가 솟구쳐올라 나를 보호해 준다. 혼자가 아니다. 뒤에서 함께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는다. 내 삶의 모습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나는 것처럼 우와우와 신이 나고 짜릿하길 바라며 우다다다 잘 뛰어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