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밴드가 있다. 일상을 진솔한 가사와 편안한 음악으로 풀어내며 위로를 전해온, 어느덧 20년을 맞이한 장수 밴드다. 밴드 이름을 독특하게 짓고 싶어 멤버들이 머리를 맞댔는데, 그때 나온 후보가 '엄마 쟤 흙먹어', '저 여자 눈 좀 봐' 같은 것들이었다고 하니 지금의 이름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보편적인 일상을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표현해내는 그 독특함을 나는 참 좋아한다.
이 밴드에서 작사 작곡을 맡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덕원 씨가 최근 에세이를 냈다. 제목은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 언뜻 보면 '열심'과 '대충'이라는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사전적 의미의 '대충'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쓸만한 정도로'라는 뜻이지만 대개는 부정적 맥락에서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내용이 치밀하고 충실하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해내며 쓰고 싶다."라고. 생각만 하다 글쓰기를 자꾸 미루는 나에게, 많은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사는 나에게, '열심히 노력해서 대충이라도 해내는 마음'에 대한 말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그림책 작가가 이 책을 읽고 만들어 올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덕원 씨의 북토크에 선물로 가져가려 만들었다는, 손바닥보다 작은 사진책을 넘기는 영상이었다. 페이지마다 시장 할머니들이 브로콜리를 팔며 종잇조각에 적어놓은 이름이 담겨있었다. 브루쿠리, 불로케리, 부록걸이, 보리꼬리, 브로커... 서양에서 건너온 채소 이름이 낯선 어르신들이 정성껏 적어놓은 글씨가 무척 정겨웠다. 사진책 제목은 <너마저 브로콜리>였다.
작가가 영상에 덧붙인 문장이 마음을 붙들었다. "얼추 품고 넘어가는 넉넉함으로 살고 싶다." 금융권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대충'과 '얼추' 같은 말과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일상에서도 상대의 의도를 충분히 알면서도 단어 하나, 표현이나 완성도에 자주 엄격해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할 말도 하지 않게 되고 관계는 점점 소원해질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 거의 다 왔습니다."
등산할 때 내려오는 이에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으면 흔히 듣는 말이다. 사실은 거짓말이다. 걸어도 걸어도 정상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다시 물어도 대답은 비슷하다. 안다. 꽤 많이 남았다는 것을. 그래도 그 말을 응원 삼아 힘을 내어 발길을 옮긴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얼추 이 정도 돼."
이 말에 담긴 예쁜 사랑스러움이 있다. 세상에 딱 떨어지는 것은 참 없다.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하고 완벽함이란 산의 정상만큼이나 멀다. 그래도,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자꾸 표현하려는 마음, 그러다가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순간들. 그런 얼추의 시간을 자주 만들다 보면 우리는 결국 얼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