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시작했다. 강변을 달릴 때면 가을바람이 얼굴에 스치며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좀 서늘해지긴 했지만 달리면 금세 열이 오르니 괜찮았다. 처음에는 숨이 차서 헉헉거렸는데 몇 번 뛰다 보니 호흡도 조금씩 길을 찾는 듯했다. 달릴 때면 마음속에 왕복 코스를 그리고 그날의 컨디션 따라 거리를 조절한다. 항상 힘든 구간은 반환점을 돌아오는 후반 코스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무거워져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하는 나만의 극복 방법이 있다.
주먹을 꼭 쥐고 엄지를 세우는 것이다. 달릴 때는 손에 힘을 빼라는 원칙은 미뤄두고 그 순간만큼은 엄지 척을 만들며 뛴다. 달리는 나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 '그래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그 생각만으로 허리가 펴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그러다 어느덧 골인 지점에 도착하면 '거 봐 잘할 수 있었네'하며 숨을 고르곤 했다.
딸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계획을 세워 과감하게 시작했는데 요즘 자신감이 떨어지며 그만둘까 고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느 밤에 딸이 함께 러닝 하러 나가자고 했다. 강변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달리고 있었다. 왕복 4km를 뛰기로 하고 출발했다. 딸은 보폭이 나보다 작지만 발걸음이 야무져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참 달렸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고 1km 정도 남을 즈음 딸이 점점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딸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이렇게 양쪽 손에 엄지를 세워 봐. 힘이 날 거야." 딸이 우습다면서도 따라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워어어어!" 하며 속도를 내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야야야. 너무 무리하지 마." 하며 나도 따라 뛰며 같이 웃었다.
엄지를 세우는 마음은 결과를 따지지 않는다. 잘하려고 애쓰는 자체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엄지의 '엄'은 '어미'에서 왔다고 한다. 어미는 자식이 노력하는 모습만 봐도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서툰 걸음마에 잘한다며 박수를 보내는 마음이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물리학의 첫 번째 법칙처럼 나는 그렇게 애쓰는 일은 너에게 계속 남을 것이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러닝을 마치고 강변에 있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나오는 길이었다. 어둑한 강변길을 청년 두 명이 "자 힘내자 힘내!" 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딸이 갑자기 그들에게 "파이팅!"이라고 소리쳤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서 엄지를 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자 청년들도 우리를 바라보며 밝게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치며 달려갔다. 그들이 지나간 뒤 딸은 얼굴을 붉히며 "내가 갑자기 왜 그랬을까?" 하며 웃었다.
응원은 번져간다. 스스로의 엄지 척이 자신에게 힘이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엄지는 또 다른 이의 마음에 전해진다. 내가 딸에게 보낸 엄지 척이 청년들에게 전해지는 것처럼. 같이 달리고 있는 삶의 길 위에서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엄지를 세우는 그런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