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뚝이는 마음

by 그래도

한밤 중에 잠에서 깼다. 방안은 희미하게 어둡고 고요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드는 일은 천천히 녹아내리는 일이다. 이불과 베개가 감싸 안고 거대한 수면의 바다로 나를 서서히 밀어 넣는다. 그러나 오늘은 물에 뜬 기름처럼 잠 속으로 스며들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샤워를 하고 식은 커피를 데우고 향초를 켰다. 잠은 이미 멀리 떠나버렸다. 지구가 아직 태양에 등을 돌리고 있는 시간, 깨어있는 밤은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노트북을 열자 커서가 서서히 깜빡였다. 아픔에 대해 쓰고 있지만 문장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 딸과 한강으로 러닝을 나갔다. 뛰기 시작하자 오른쪽 종아리 아래가 미묘하게 불편했다. 뛰다 보면 풀리겠지 싶었지만 통증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결국 달리기를 멈추었다. 딸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다. 딸과 나란히 걸어 돌아오는 길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다음 날부터 걷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오른쪽 종아리와 뒤꿈치 사이에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아픈 오른쪽 다리로 땅을 딛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다 보니 걸음이 어색했다. 다리를 절뚝이는 일은 아픔을 피하려는 자연스러운 몸의 방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통증은 옅어졌고 걸음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아파보니 알 것 같았다. 우리가 보는 어떤 부자연스러움은 어쩌면 아픔을 피하기 위한 자세라는 것을. 누군가의 날 선 말이나 무뚝뚝한 행동도 단지 그가 아프지 않으려는 노력일 수 있다. 사람은 고통스러우면 티를 내어 주위의 배려 속에서 회복하곤 한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거나 주위에 알릴 수 없는 고통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한다 말하는 것은 어렵고 조심스럽다. 글을 쓰는 동안 주위는 아직 어둡고 초는 여전히 붉게 타고 있다. 찾아갈 부모님이 없어 고향에 가지 않는 설날 새벽, 비어 있는 마음 한켠이 소리 없이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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