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눈을 바라보는 마음

by 그래도

3월의 두 번째 날,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3월이라 봄을 맞이하는 진짜 봄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원도 산간에는 눈이 많이 왔다고 했다. 아직 그곳에는 겨울이 남아 있구나 싶다가, 문득 그 눈이 올겨울의 마지막 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눈.

그럼 내가 지나 보낸 올겨울의 끝눈은 언제였을까?


첫눈은 반가움이다. 많은 이들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여기며 기념한다.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고 괜히 만나자는 약속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끝눈은 다르다. 오더라도 그것이 끝인지 알지도 못한다. 한 번쯤 더 오겠지 생각하다가 떠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마지막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래서 끝눈은 아쉬움이다.


얼마 전 형들과 조카들이 함께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명절에 모여 장기자랑하던 조카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이 무척 귀여웠다. 영상에는 낯익은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웃음소리. 그때는 그 웃음이 오래도록 계속될 줄만 알았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 정채봉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중에서


엄마를 만나 품 속에 들어가 억울했던 일 한 가지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는 이 시를 어머니와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때 나는, 어머니 떠나신 뒤 이 시를 다시 읽게 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 시를 쓴 정채봉 시인도 세상을 떠났다. 시인은 보고 싶던 엄마 곁에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본다.


언젠가 끝나고, 언젠가 헤어지고, 언젠가 사라질 것에 대해, 그것들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언제든 아버지께 전화를 걸면 "그래 병수냐. 엄마 바꿔줄게." 그 열한 자의 말을 오래도록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이들은 중2병 시기가 지나도 여전히 아이들일 것만 같았다. 그 시간이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끝눈의 시절이 언제였는지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못한다는 생각을 조금씩 더 하게 된다. 모든 사물과 관계에는 저마다의 유통 기한이 있다. 다만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늘 끝눈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관계와 시간을 가꾸며 살고 싶다.


봄눈이 끝눈이 되어 한번쯤 더 내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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