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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Jan 04. 2023

멍석을 깔아놓으니 글이 안 써졌다.

멍석의 재해석 - 브런치 작가가 되고 한동안 글을 못 쓴 이유

2022년 '글 쓰는 나'에게 가장 기뻤던 일 중에 하나는 '브런치 작가'선정된 것이었다.

오랜 도전 끝의 결과라 너무 기분 좋았다.

콩닥콩닥한 그 기분은 심장의 펌프질을 거쳐 뿌듯함 손가락 끝에 전해졌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묵직한 손가락. 그 손가락으로, 브런치 작가가 되면 꼭 쓰고 싶었던 '브런치 작가 도전기'를 썼다.

https://brunch.co.kr/@dessinflou/104

그리고 본진이었던 블로그보다 브런치에 접속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브런치 작가의 특권인 [발행] 버튼을 획득했지만, 내 글들은 여전히 [저장]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장] 버튼을 애정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오랜 서랍생활 습관에 의한 귀소본능도 아니다.  

단지 [발행] 버튼에 어울리는 글이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

그렇다고 글이 정말 형편없었던 것도 아닌데..

블로그였으면 [발행]의 자격? 은 부여받았을 그런 글들.

하지만 브런치에서는 차마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밖에서 보면 [발행]되지 못한 글은 '없는 것'과 같다.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글만 주야장천 써댔다.

그렇게 내 브런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이 되었다.


2022년 12월의 마지막 날 한해를 되돌아보는 시간.

가장 기뻤던 일도 브런치 작가가 된 거지만 가장 답답했던 일도 브런치 작가가 된 일이었다.

계속 신경 쓰이는 이런 답답한 현상.

나는 왜 발행 버튼을 못 누르는 걸까.


온갖 재주를 부리는 사람도 멍석을 깔아주면 쭈빗쭈빗 아무것도 못한다더니 2022년의 내 모습이 그러했다.

"제가 브런치 작가만 된다면!"

"브런치 작가가 되면!"

사람들이 가득 찬 광장에서 외쳤더니 누가 와서 브런치 멍석을 깔아줬다. 그런데 글을 못쓰네?

이런 꼴이 아닌가.


왜 그런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글이 안 써지는 건 아니다.

시작하는 건 쉽다. 하지만 쓰다가 뭔가가 자꾸 마음에 안 들고 그 불편함이 이어지면 글쓰기를 중단한다.

중단해서 저장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중단하고. 중단된 글들은 발행되지 못한다.

 

마음에 안 든다는 건 글을 쓰는 중에도 계속해서 내 글을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평가의 기준도 편하게 쓰던 블로그보다 조금은 더 높아졌을 듯.

그렇다.

나는 점점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글을 평가하는 독자와 편집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글을 쓰는데 드는 노력보다 스스로의 글을 평가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워낙 잘 쓰시는 분들이 많은 곳이니 뭔가 내 브런치의 글에도 메시지가 명확해야 할거 같고, 문장은 조금 더 정제되어야 할 거 같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할 거 같은.. 그런 완벽한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고 했던 거 같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글쓰기 능력이 일론 머스크의 로켓을 타고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나가는 어나더 레벨이 되는 것도 아닌데, 내 눈높이만 이미 대기권 밖에서 궤도를 돌며 제대로 된 글이 아니면 대기권에 접근도 못하도록 막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쓰겠다고.

나는 이제 막 브런치 작가가 된 브린이일 뿐인데.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마침 시작되는 새해에는 2022년과 다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대단한 글에 집착하지 말고 글 쓰는 행위에 중점을 두자.

일단 브런치의 발행 버튼과 친해지자.

멍석은 '자 어디 한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의미로 까는 게 아니라 맨바닥에서 하면 아프니까,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재주를 부리라고 깔아준 쿠션에 불구하다.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멍석 위에서 마음껏 재주를 부릴 수 있 않을까.

우선은 그런 마음으로 멍석 위에 발을 올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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