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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Apr 03. 2023

초면이지만 나 자랑 좀 할게.

할머니의 유쾌한 자랑

- 학생~ 나 빅맥 당첨됐다?

   제일 좋은 거 당첨된 거지?


내가 앉은 테이블의 오른쪽 대각선 테이블에서 햄버거를 드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나에게 자랑하셨다.

정확하게 내 오른쪽 테이블의 앞에 앞 테이블에 혼자 앉아 계시던 분이다.

내 오른쪽에도, 그 앞 테이블에도, 그 뒤의 테이블에도, 내 앞의 테이블에도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게 말을 거시는 할머니.


- 오 그래요? 빅맥이 제일 좋은 거 맞아요.

   축하드려요. 좋으시겠어요~


초면에 자랑부터 하시는 낯선 할머니의 급습?이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귀여우셨다.

천진난만한 즐거움의 표정이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 카메라에 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할머니도 혼자 식사하러 오신 거 같은데 - 물론 그곳 손님의 절반이상은 혼밥 손님이긴 했지만 - 맥도널드에서 주문한 음식과 함께 나눠주는 스크래치 즉석 복권에서 상품의 최상위급에 속하는 '빅맥'이 나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자랑하고 싶으셨을까.

진심으로 기쁨이 묻어있는 할머니의 인상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한테 자랑하시는 걸까?'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기쁨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나였나 보다.' 하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줬다. 그래서 나는 그 자랑을 듣는 순간 진심을 담아 축하드렸다.


뭔가 계속 기쁨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막상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는 표정으로 잠시 침묵하시던 할머니는 곧이어 나에게 질문했다.


-근데 학생은 뭐 나왔어? 좋은 거 나왔어?

-아. 저는 불고기 버거 나왔네요.

-응 그것도 좋은 거네~

-네~ 감사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할머니는 다 먹은 흔적을 정리해서 반납대로 가시면서 나에게 "맛있게 먹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네 안녕히 가세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햄버거를 크게 한입 베어 먹었다. 곧이어 케첩이 묻은 감자튀김을 입안에 몰아넣고, 콜라로 입안에 수분을 공급했다. 패티의 꾸덕한 식감과 감자튀김의 짭짤함, 콜라의 달콤한 청량감이 입안에서 춤을 췄다.

등 뒤에선 또다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당첨된 햄버거를 교환하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자랑하시는 거 같았다.

아르바이트생의 리액션은 무뚝뚝한 나와는 톤부터 달랐다.


- 어머 정말요? 우와 완전 축하드려요~


와.. 저 정도 리액션이면 정말 기쁨이 두 배이상 되겠구나..

나도 당장 일어나서 당첨된 불고기 버거 복권을 직원에게 내밀며 자랑하고 싶어졌다. 저 직원에게 가서 자랑하 당첨된 햄버거 더 맛있게 하는  리액션 소스가 가 된 버거 내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미 상하이 치킨버거 세트를 먹고 있고 내 배는 그것에 호응하고 있으며, 다음 행선지는 집이 아니라 전시회 관람이라 식사 후 불고거 버거를 교환한다고 하더라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나는 언젠가 다시 이 지점에 오게 된다면 그때 교환해야겠.

문득 햄버거를 입안에 가득 넣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겨서 피식하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행히 입안에 음식물은 입꼬리의 틈을 비집고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다.  


전시회 관람 때문에 처음 오는 동네에서 마땅히 점심 먹으러 갈만한 곳을 찾지 못해 향한 맥도널드였다.

혼밥에 익숙하지만 매번 음식을 다 먹을 동안 인터넷이나 유튜브 관람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었는데, 오늘은 운 좋은 할머니의 유쾌한 자랑 덕분에 전자기기의 도움 없이 모처럼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할머니 이 맥도널드 지점에 자주 오시는 분 같아 보였는데, 다음번 스크래치 복권에도 당첨되시길.. 그래서 그때도 혼밥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유쾌함을 마음껏 나눠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 먹은 포장지의 흔적을 정리하며 시계를 봤다. 지금 나가면 이후의 일정을 진행하는 데 적절한 시간이다. 포장지를 분리수거한 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매장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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