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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Feb 01. 2023

겨울은 볼게 없어서 매력있다.

한적한 풍경 속 카페

오랜만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은.


복잡한 머리속에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를 넣어주고 싶어서 오랜만에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이왕 시동 건 김에 국도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시외로.


겨울의 나들이.

차가운 바깥공기를 버틸 수만 있다면 나름의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봄과 가을을 나들이 계절, 여름을 피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로 봄, 가을엔 꽃과 나무가 많은 내륙지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여름엔 물이 있는 계곡이나 바닷가로 많이 몰린다. 해당지역 숙박비도 그런 현상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그러면 겨울은?

겨울에 시외로 나가서 뭐 볼 게 있을까.


겨울은 그 '볼 게 없는 게' 매력이다.


같은 장소를 봄여름가을 중에 한번 오고 겨울에 오면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진다.

봄 여름 가을에 풍경을 가득 채웠던 나뭇잎들과 꽃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들이 있던 자리는 원래 비워있던 공간인 듯 뻥하고 뚫려있다.  

가구나 잡화로 가득 차서 좁아 보였던 방안이 갑자기 확 넓어진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겨울의 야외 공간은 그런 확 트인 시원함이 있다.

물론, 알록달록한 색으로 채워진 풍경도 눈을 즐겁게 하는 맛이 있지만, 그것과 상반된 단일 톤의 색으로 가득한 풍경. 존재하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이 시야가 확 트인 시외의 공간은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화장을 모두 지운 맨얼굴 같다고 할까.

꾸몄을 때보다 이쁨은 덜하겠지만 그 나름의 매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확 트인 시야를 배경으로 한 자연의 맨얼굴이 좋아서 나는 겨울의 풍경을 좋아한다.

 

온통 옅은 갈색빛으로 도배된 세상을 걷다가 추위에 몸이 떨릴 때쯤 카페를 발견했다.

치킨 집만큼이나 많은 게 카페라고 하더니 여기에도 카페가 있네.

이럴 땐 참 반갑다.

모처럼 먼 곳까지 갔는데 바로 돌아오긴 아쉬우니깐..

잠깐 쾌적한 공간으로 들어가 그 동네를 감상하고 싶을 때 카페만큼 적합한 공간은 없다.

마침 한쪽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풍경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차가워진 한파에 주의하라는 재난 문자가 쉴 새 없이 오던 오늘. 이 카페 속의 공간은 다른 세상이다.

통유리를 통해 들어와 넘쳐흐르듯 카페를 가득채운 따뜻한 햇살은 겉옷을 벗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동화 '해님과 바람'이 떠오른다. 바람과 태양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하는 내용의 그 동화. 그 현장 속에 내가 앉아있는 기분이다.

외투를 벗으며 마음 속으로 말한다.


- 네. 해님. 당신의 승리에요. 외투를 벗을게요.


그러고 보니 오늘 밖에선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었다. 차를 운전할 때 나도 모르게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잡아야 할 만큼 거센 바람에 차가 한 번씩 휘청했으니까.

주차하고 산책할 때도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할 만큼 거센 바람이 불었으니, 정말 해님과 바람의 대결 현장이었나 싶다. 지금도 통유리 바로 앞의 소나무가 바람의 리듬에 맞춰 흔들흔들 춤을 춘다.

그에 비해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작렬하는 태양의 통유리 앞에서 외투를 벗고 앉아있는 나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카페 안쪽에는 5개의 테이블이 있고 각각 4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함께있다.

건물의 3면은 막혀있고 한쪽 벽면은 두개의 커다 통유리로 되어있다. 그 통유리 방향으로 긴 테이블이 붙어있고, 비교적 높은 의자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높이는.. 발을 아래로 뻗어보니 스타벅스 창가 의자와 비슷한 거 같다.

이런 걸 남향이라고 하나?

동서남북 어플은 안 켜봤지만, 아마도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햇살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울 거 같은 위치다.

햇살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두 개의 통유리 사이에 놓인 프레임 그림자 사이에 내 몸을 숨겼다.

그림자가 넓지 않아서 노트북은 햇볕에 노출되어 있는데 모니터 뒷면이 따뜻함을 넘어서 뜨끈하다.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기분이다.


처음 들어왔을 땐 노트북을 펼칠 생각은 없었다.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멍하니 흔들리는 소나무의 잎들을 바라보니까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일주일 동안 키보드 위에 손만 올리고 움직이진 못했었는데.

시외로 나오길 잘한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내 글은 참 비경제적이다.

집에서는 글이 거의 안 써지고 카페로 나가야만 한다.

그것도 늘 같은 카페는 또 안된다. 그래서 단골카페가 몇 군데 있고 내가 여행을 갔던 지역엔 글이 잘 써지는 나만의 카페가 몇 군데 있다.

잘 써지는 날에는 한자리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완성하지만, 보통은 글 한편. 포스팅 하나에 아메리카노 2잔이 소요된다.


그렇게라도 써지면 다행이다.

뭔가 쓰고 싶어서 자리잡고 앉았는데, 안 써질 때의 스트레스 기회비용은 더 크니깐.

글로 눈에 띄는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아닌 지금 나에게 글쓰기는 지출 덩어리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쓰고 있는 건 그런 불편함과 기회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완성된 글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더 크고 매력적이기 때문이겠지.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땐 3개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다 나가고 나 혼자다.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막 지나가네.

이럴 땐 창가의 자리를 조금 더 지켜주는 게 가게입장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손님이 아무도 없는 가게에 들어가는 걸 주저하니까.

오랜 카페 투어 경험상 누구라도 한 사람 창가에 앉아서 노트북이라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확인하면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나가는 예비 손님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창가자리에 앉아서 일종의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외곽지역의 특성상 가족손님들이 많이 오는 거 같고 가족의 특성상 한 팀이라도 들어오면, 시끌벅적 사람 사는 냄새가 잔뜩 난다. 그러니까 손님이 없는 잠시 동안의 조용한 평화와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을 즐겨본다.


마침표를 찍기가 무섭게 지나가던 4명의 가족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아이 두 명과 엄마 아빠.

곧이어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오신다.

가게 안은 다시 시끌벅적 활기를 띤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평화로운 카페에서 오랜만에 글을 쓰게 해 준 대가의 호객행위 역할은 다한 거 같다.

도로에 차들이 몰리기 전에 돌아가야지.

돌아가는 길에 차가 많이 막히면 모처럼의 말랑말랑한 여유로움이 금방 퍽퍽해질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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