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을 꿀뚝뚝으로 바꿔버린 마법 같은 순간
10년 전 우리 집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밥 묵자'였다.
'밥 묵자'는 KBS에서 오래전 방영했던 개그 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다.- 개그맨 김대희 씨와 신봉선 씨 그리고 장동민 씨가 각각 아버지, 어머니, 아들의 역을 맡아 무뚝뚝한 경상도 가족의 식사시간을 풍자했다.-
그 코너의 가족에게 식사시간은 말 그대로 밥 먹는 시간이다.
대화는 없다.
오직 밥그릇과 숟가락이 내는 달그락 소리만 있을 뿐.
한동한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출연자 중 한 사람이 적막을 깨기 위해 말을 꺼내 보지만 대화로 이어지진 못한다. '대화'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위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상대의 공감에 닿지 못하고 식탁 위 어딘가로 뚝뚝 떨어진다. 무뚝뚝한 그들에겐 침묵보다 다정함이 더 불편하다. 다정함의 부재는 대화의 부재로 이어진다. 다정함이란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공감과 따뜻한 말투를 의미하는 거니깐.
우리 집도 그랬다.
다들 밖에서는 어떤 캐릭터인지는 몰라도, 집에서는 늘 그랬다.
누군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왔어?" "응"이 대답의 전부였다.
그런 분위기가 기본값이다 보니 식사시간이라고 다를 게 없다.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숟가락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일상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햇살이가 우리 집의 반려견이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만 같던 만년설이 녹아내리듯 차가운 무뚝뚝함으로 단단히 뭉쳐있던 거대한 빙하는 반려견의 애교와 장난 앞에 서서히 녹아내렸다. 이제 막 어미젖을 뗀 녀석은 짧고 작은 것들로도 자기 의사 표현을 다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작은 주둥이로 멍멍 짖고, 가족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녀석의 짧은 꼬리는 이륙을 준비하는 헬리콥터의 날개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짧은 꼬리가 이륙 준비를 마치면 짧고 뭉툭한 다리는 현관문을 향해 달려간다. 달려가는 그 길은 이륙을 위해 전속력으로 발돋움하는 비행기의 공항 활주로를 연상케 한다. 어찌나 꼬리가 빨리 회전하는지 엉덩이가 공중으로 이륙할 것만 같다.
빠르게 회전하는 짧은 꼬리, 현관을 향해 뛰어가는 짧은 다리, 뒤뚱뒤뚱 거리는 통통한 엉덩이는 재야의 연금술사가 세상의 모든 귀여움을 녹여 만든 순도 100프로의 결정체 같았다. 그런 녀석 앞에서 어떻게 미소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식구가 중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오면 댕댕이는 짧은 다리로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아무리 뛰어봤자 발목까지 밖에 못 오르는 녀석을 한 손으로 안으면 혓바닥을 할짝할짝거리면서 뽀뽀를 요구한다. 그 뽀뽀를 거부하거나 안아주지 않으면 상체를 낮추고 엉덩이를 올린 체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호의에 반응하지 않은 식구를 응징하는 자세를 취한다. 아무리 으르렁거리고 입을 실룩거려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녀석이지만 우리는 "아이고 무서워라. 뽀뽀 안 해줬다고 그렇게 화낼 일이야~"하며 호응한다.
어색해서.
낯간지러워서.
차가운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다정함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도?
세상 물정도 눈치도 위아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녀석으로 인해 우리의 식사시간에도 '대화'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늘 댕댕이는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똥은 제때 쌌는지, 배변 패드 안에 쌌는지 밖에 쌌는지, 가족이 나갈 때 울지는 않았는지, 돌아왔을 때 물어뜯거나 헤쳐놓은 건 없었는지, 뭘 먹이면 되고 뭘 먹이면 안 되는지. 우리 집에 들어온 건 강아지 한 마리가 아니라, 대화와 공감의 씨앗이었다.
그 작은 씨앗은 햇살 같은 녀석의 성장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 잎을 내어놓고 꽃을 피웠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녀석을 안고 산책하러 나가셨다. 산책 나갈 때마다 어쩜 이렇게 이쁘냐고, 무슨 종이냐고, 몇 살이냐고 관심 가지며 다가오는 낯선 사람들에게서 뿌듯함을 느끼셨는지 집으로 돌아오면 밖에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을 웃으며 식구들에게 전하셨다.
개를 왜 방에서 키우냐고, 개는 집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냐고. 개 키우면 신경 써야 할게 한둘이냐며. 개와 사람의 주거환경은 분리해야 한다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집으로 들어오면 댕댕이부터 찾고, 자다가 화장실 갈 때도 반려견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부터 하신다. 점점 말이 많아지고 그 말들은 대화로 이어져 공감의 장독대 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맛깔나게 숙성되어 갔다.
우리 집은 이제 무뚝뚝이 아니라 꿀뚝뚝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