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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할짝.

우리 서로에게 엄마손이 되어주자.

by 하임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떠졌다.

눈을 감고 싶은데 눈이 떠졌다.

베개 옆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터치 했더니 이제 막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까진 한참 부족한 시간.

다시 잠들고 싶다.

눈꺼풀 밖 세상을 외면하고 싶다.

억지로라도 눈을 감고 다시 잠으로 빠져들고 싶다.

지금 깨면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거 같은 그런 기분.


억지로 눈은 감았지만 몸이 불편했다.

아랫배가 부글부글 거렸고 가슴도 뭔가가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다시 잠들어야 한다.

이럴 때 눈을 뜨면 그다음 상황은 뻔하다.

몸을 뒤척이며 잠들기 편한 자세를 찾는다. 옆으로 돌아눕자 등 뒤로 차가운 습기가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식은땀. 습기는 목을 타고 얼굴로 올라와 눈꺼풀을 밀어 올린다.


눈을 떴다.

재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간다. 본능적 반응이다.

화장실 문을 닫을 겨를도 없이 변기 뚜껑을 열고 어젯밤에 먹은 것을 토해낸다.


토하는 건 너무 싫다.

구토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나는 다른 통증보다 특히 구토가 고통스럽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단순히 토해내는 행위가 타인에 비해 몸에 심각한 부담을 주는 건지, 아니면 입 밖으로 내 영혼도 함께 빠져나갈 거 같은 그런 공포인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힘들고 당황스럽다.

반복되는 구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이제 다 게워내서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도 헛구역질이 계속 난다.

정신을 잃을 거 같다.


그때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돌아봤더니 댕댕이가 달려와서 내 등에 앞다리를 올리며 서서 할짝 거린다.


- 햇살아. 저리 가. 뽀뽀하면 안 돼. 더러워.

갈라진 목소리로 녀석을 밀어 떨어뜨린다.

하지만 녀석은 쪼그려 앉은 내 등에 다시 올라타서 계속 할짝 할짝을 시도한다.


- 저리 가. 햇살아. 나 괜찮아. 이제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가서 자.


녀석은 내가 뭐라고 말을 할수록 더욱더 다가와 할짝거렸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다 일어나서 반가워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녀석은 내가 일어설 때까지 옆에 붙어 계속 할짝할짝거렸다.


변기 물을 내리고 세정제로 손을 씻은 후 눈가와 입가를 닦아냈다.

그리고 햇살이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내 방 침대로 가서 눕는다.

늘 동생 곁에서만 자던 햇살이. 오늘은 아침까지 내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입이 심심해서 간식을 가지러 부엌으로 가는데 거실 한쪽 구석에 햇살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평소와 달라 곁에 다가가 봤더니 자신의 오른쪽 뒷다리를 사탕 먹듯이 핥고 있다. 뒷다리에 뭐 묻었어? 형아가 한번 보자! 다리를 확인하려는 순간, 녀석은 사납게 짖으며 근처에 다가오는 걸 격하게 거부했다. 가끔 근처에 먹을 걸 숨겨뒀을 때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날도 그저 숨겨둔 간식이 있어서 저러나? 싶었는데, 잠시 후 녀석이 일어나 배변패드로 가면서 뒷다리를 심하게 저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동물 병원에 데려갔더니 수의사는 오른쪽 뒷다리 관절에 문제가 있다고. 주사 한 대 맞고 3일간은 약을 먹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 당분간 뛰거나 무리한 산책 하지 말고 살도 조금 빼야 해요. 반려견은 살찌기 시작하면서 온갖 병들이 찾아옵니다. 앞으로 더 자주 관절에 무리가 올 수도 있고요.

특히 겨울이 지나갈 때쯤 병원에 찾아오는 개들 대부분은 살이 급격하게 쪄서 온다고. 보호자에게 뭘 줬냐고 물어보면 다들 '고구마' 줬다고. 어쩜 그리도 같은 대답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네. 저희도 안 주려고 하는데 먹을 때마다 너무 애처롭게 쳐다봐서 외면하기가 힘들어요. 잘 먹는 모습 보면 귀여워서 계속 주게 되고.

- 다른 분들도 다들 같은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살찌면 사람에게도 안 좋지만 특히 강아지들에겐 각종 합병증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되면 견뎌내지 못하는 강아지들 많이 봤어요. 당연히 관절에도 안 좋고 방치하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네.. 햇살이 안 보이게 숨어서 먹거나 그냥 우리가 고구마 자체를 안 먹어야겠네요. 안 그래도 아까 다리 절뚝거릴 때 어찌나 놀랐던지. 햇살이가 아침부터 구석에서 계속 자기 다리를 핥고 있더라고요.

- 강아지들은 어디 아픈 데가 있으면 그 부위를 혀로 핥아요. 그렇게 하면 아픈 부위를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발바닥을 핥으면 발바닥에 습진이나 무슨 문제가 있는 거고, 다리를 핥으면 지금처럼 관절에 문제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주의 깊게 살펴보고 병원으로 데려 오세요.


진료와 처방을 받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진입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조수석에 앉은 햇살이를 바라봤다.

병원만 가면 스트레스를 받는 녀석은 헥헥 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고~ 입 밖으로 혀 떨어지겠다. 이제 집에 가니깐 진정해.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아침에 다리 핥은 게 아파서 그랬던 거구나. 핥으면 아픈 게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였어?

문득 내가 장염에 걸려서 토하던 그날 밤이 생각났다. 그럼 그날 계속해서 내 입을 핥으려고 했던 것도 그렇게 하면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던 내가 나을 거라 생각해서 그랬던 걸까. 어렸을 때 배 아프면 엄마가 손으로 내 배를 쓰다듬으며 엄마~ 손~은 약손~이다. 노래 부르면 만져줬던 것처럼?


여전히 혀를 내밀며 헥헥 거리는 녀석을 한번 더 쓰다듬었다.

고마워. 나도 너에게 엄마손이 되어줄게. 우리 아프지 말고 오랫동안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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