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보다 어두웠던 그날의 새벽
끼잉 끼잉.
흐릿하게 들려오는 앓는 소리.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의 발원지를 찾아 귀를 더듬거린다.
눈 감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꿈일까. 눈을 떠도 들려오는 건 현실일까.
신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절반의 시야 속에 검은 형체가 흐릿하게 보인다.
수면등을 역광으로 받고 서있는 작은 그림자.
해앳살아.. 흠흠. 왜 그래?
평소 같으면 목소리를 듣고 달려와 내 손을 빨던 댕댕이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순간 새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형광등 스위치를 켜고 문 앞에 서 있는 댕댕이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댕댕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더듬어 만져본다.
얼마 전 오른쪽 뒷다리 관절이 안 좋았던 기억에 뒷다리를 쓰다듬었다. 별 이상 없어 보인다.
접혀 있는 귀를 열어본다. 댕댕이는 귀에 피부 질환이 있어서 병원을 다니고 있는 중이다.
별 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디가 아픈 거야?
시선은 귀에서 댕댕이의 얼굴로 옮겨왔다. 순간 머리털이 주뼛 솟는 듯했다.
내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댕댕이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손바닥을 댕댕이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손을 댕댕이의 눈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그리고 멀리를 반복하며 반응을 살폈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앞을 못 보는 거 같다.
이게 도대체 무슨..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식구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 댕댕이 곁에서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다.
..
댕댕이가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산책 데리고 나가면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꼭 사람 눈동자처럼 이쁘다고 칭찬했던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완전히 뿌연 회색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낑낑 거리는 댕댕이의 표정엔 불안한 기색이.
회색 눈동자의 끝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나는 네이버에 '반려견 회색 눈'을 검색했고 동생은 24시간 동물병원을 검색했다.
검색한 24시간 동물 응급센터 몇 군데에 전화했지만, 응급 당직자는 있는데 안과 질환 수의사는 없어서 특별한 치료는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했다.
방법이 없다. 우리는 일단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일시적인 증상이겠지. 설마 갑자기 이렇게 눈이 안 보인다고?
얼마 전에 동네 단골 동물 병원에서 그랬다.
귀 치료를 받으면서 수의사에게 동공 안쪽이 좀 탁해진 거 같다고 한번 봐달라고 했었을 때, 수의사는 나이 든 반려견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노안의 증상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노안 현상으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 거야? 며칠 전 여행 갔을 때도 잘만 뛰어다녔는데? 어젯밤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었는데? 혹시 뭘 잘못 주워 먹어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 아닐까.
괜찮아. 괜찮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햇살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와 동생이 녀석을 안고 토닥거렸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녀석이 불안함이라도 덜 느끼도록 안심시켜 주는 거밖에 없다.
녀석의 앓던 소리는 멎었다. 눈을 감았고 잠이 들었다.
불을 끄고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무리 눈을 꼭 감아도 잠이 오질 않는다.
스마트폰 밝기를 최소한으로 하고 '반려견 회색눈'을 계속해서 검색한다.
온통 심각한 병명 밖에 없다. 얼마 전 동물 병원 수의사의 말처럼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곧 괜찮아졌어요!'라는 포스팅을 발견하면 잠들 수 있을 거 같다.
원하는 내용의 포스팅은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병원의 문이 열리는 아침이 오길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