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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입니다.

바램은 어둠속으로.

by 하임

안돼! 거기 아니야!


잠에서 깬 녀석은 계속해서 여기저기 부딪혔다.


녀석의 머리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아침이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지난밤의 희망도 사라졌다.

햇살아 어디 갈 거야? 물? 빠빠? 오줌?

어디로 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녀석의 옆을 따라다니며 벽에 머리가 부딪히려 할 때마다 나는 손바닥을 그 사이에 끼워 넣어 부딪히지 않게 했다.


9시에 우리 가족은 외출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동물병원 문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 병원까지 운전해서 가는 시간이 20분 정도 걸린다. 외출준비를 마친 우리는 햇살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분침이 40을 가리킬 때까지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0시가 조금 지나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담당 수의사는 댕댕이의 눈에 빛을 비추며 몇 가지 검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출구 쪽을 향해 재빠르게 도망갔을 댕댕이는 얌전히 앉아서 수의사의 진료에 응했다.

햇살이는 지금 여기가 병원이라는 건 알까? 앞에서 수의사가 빛을 비추고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을까.

검사를 하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 복잡한 심정 속에도 단 한 가지 바람만은 주문처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제발 실명은 아니길. 시력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길'.


설마 완전한 실명은 아니죠?

검사를 마친 수의사가 결과를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물었다.

음. 아니요. 완전히 실명한 거 같습니다.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 귀에 꽂혔다.

보세요. 눈동자가 빛에 반응하지 않고 이렇게 손바닥을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해도 꿈쩍하지 않죠? 완전히 앞을 못 보는 거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럴 수가 있죠? 어젯밤까지만 해도 별 이상 없었는데.

글쎄요. 강아지의 실명은 단순히 눈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질병에 의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당뇨로 인한 합병증인 경우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여기서는 더 자세하게 검사할 수 없으니까 우리 병원과 연계하는 2차 종합병원 소개해 드릴게요. 언제쯤 괜찮으실까요? 내일은 일요일이니깐 월요일 가능하겠네요.

가장 빠른 시간으로 잡아주세요.



월요일 오전 10시. 우리는 지난 토요일 동네 동물 병원에서 예약해 준 2차 동물 병원으로 갔다. 그곳은 사람의 종합병원과 흡사했다. 가벼운 질환은 받지 않고 1차 병원을 통해 2차 병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받은 동물들만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내과, 외과, 안과 응급실 등 일반 종합병원처럼 전문분야가 나뉘어 있고 각 분야는 전문 수의사가 진료를 맡는다.

대기실에는 각 분야 담당 수의사들의 약력과 사진이 반복해서 스크린을 통해 소개되고 있었다.

넓은 대기실에 비해 대기하고 있는 보호자 숫자는 적었다. 좁은 대기실에 비해 대기하는 보호자들이 많은 동네 동물병원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마치 올림픽 예선에 참가하는 선수들보다, 본선 진출자가. 그리고 준결승, 결승으로 향할수록 선수들 숫자가 적어지듯이 1차 병원에서 선별된 중증환자들이 오는 곳이다 보니 그런 거 같았다. 우리 햇살이는 예선에서 탈락했으면 좋았을 텐데.


먼저 내과에서 피검사를 하고 안과에서 눈 검사를 했다.

병명은 당뇨성 백내장.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완전 실명 상태이며 당뇨로 인해 안구 내부에 염증이 가득한 아주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당뇨성 백내장인 경우 이렇게 하루아침에 시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사람의 경우 당뇨에 걸려도 관리를 통해 웬만한 합병증은 예방할 수 있지만 강아지는 사람과 다르게 합병증이 걸려서 당뇨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만큼 강아지에겐 당뇨 = 합병증은 흔한 일이고 증상도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서 당뇨만 발견되는 경우보다 갑자기 앞을 못 보는 증상으로 안과 검사를 하다가 당뇨로 진단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치료 방법은 수술밖에 없다고. 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실명은 물론이고 녹내장으로 인해 안구 척출까지 갈 수도 있다고 안과 담당 수의사는 말했다.


백내장은 총 4단계의 진행 단계로 나뉘는데 3단계까지는 그나마 수술이 양호하지만 4단계는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서 수술 성공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우리 댕댕이는 현재 3단계라 수술이 가능한 단계지만, 안구에 염증이 너무 많고, 혈당이 500을 넘어서 우선 지소적인 혈당 관리와 함께 눈의 염증 치료가 필요하고, 안과 치료 후 염증 수치가 줄어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안구의 염증수치가 줄더라도 혈당이 안정적으로 잡히지 않으면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모든 수술의 가능 여부는 안정적인 혈당이 기본이라고 했다.

그러니 혈당을 우선 안정화시켜야 하고, 혈당 수치가 잡힐 때까지 백내장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길 관리하면서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안과에선 염증 억제 내복약과 두 종류의 안약을. 내과에선 댕댕이의 몸에 혈당 측정기를 부착하고 인슐린액과 주사기 한 상자, 소독용 솜 한통을 처방했다.

오늘부터 매일 몇 번씩 안약을 넣고, 아침저녁으론 보호자가 인슐린 주사를 줘야 한다고.

주사라니? 내 팔에 꽂히는 주삿바늘도 무서워서 못 보는 나인데, 어떻게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댕댕이의 살에 꽂지? 그것도 하루 한 번도 아니고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이나. 이 작은 아이에게 주사 놓을 때가 어딨다고? 아침저녁으로 주사하면 같은 자리에 계속 맞게 되는 건 아닐까. 전문가가 아닌 내가 놓으면 아프지 않을까. 댕댕이는 주사 맞을 때 움직이지 않고 과연 가만히 있어 줄까. 가만히 있어줘야 할 텐데.


머릿속을 떠도는 수많은 의문과 걱정으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 방법을 설명하는 수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과 귀가 닫힌 나는 수의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주사 놓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선생님 설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집에서 몇 번씩 돌려보고 참고하겠다고. 손만 나오도록 찍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불안함이 느껴졌는지 수의사는 촬영을 허락했고, 덧붙여 주삿바늘 자체가 굉장히 얇아서 댕댕이는 주삿바늘이 들어오는 느낌이 거의 없을 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주삿바늘을 찌르면 댕댕이가 아플까 봐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해야 한다고. 인슐린 주사는 댕댕이가 밥 먹기 직전에 주는 것이 가장 좋으니깐, 잊지 말고 시간 잘 지켜서 하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야 병원을 나섰다.

머리가 무중력 상태처럼 멍하다. 제발 당뇨가 아니기를. 제발 완전한 실명이 아니기를. 휴일 내내 했던 기도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자리엔 처음 듣는 생소한 정보들이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처럼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안약을 넣어야 하고. 주사를 놓아야 하는구나. 처방받은 약을 매일 먹어야 하고, 처방받은 당뇨견 전용 사료만 먹여야 한다.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병원에서의 기억마저 공기 중으로 휘발되어 사라질 거 같아서.

디테일은 집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촬영한 동영상과 병원에서 준 프린트물로 채워 넣자.


집으로 가는 길에도 댕댕이는 초점 없는 회색 눈빛으로 어딘가 모를 허공을 응시하며 낑낑 거린다.

댕댕이를 안은 어머니가 댕댕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아이고. 산책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눈이 사람처럼 검고 너무 예쁘다고 했는데, 이렇게 뿌옇게 회색으로 변해서 엄마가 너무 속상하다.. 하지만 걱정 마 엄마랑 형아랑 누나가 우리 햇살이 꼭 낫게 해 줄게. 너 덕분에 우리 집이 참 활기차고 행복했는데..

어머니와 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이 눈가에 번지지 않도록 운전대를 더욱 세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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