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맞는 동물병원을 찾아서
- 요즘 견주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를 사람처럼 키운다는 거예요. 그런 게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개를 사람 키우듯이 존중하면서. 그렇게. 오냐오냐 키우면 안 됩니다.
자. 보세요.
이렇게. 딱. 힘으로 제압하고 목을 잡으면 개는 꼼짝을 못 합니다.
수의사는 뒤에서 겨드랑이로 댕댕이의 몸을 누르고 손으로 목을 세게 잡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 만약에 힘으로 제압하더라도 거칠게 반응하면 어떡해요? 기다렸다가 진정하면 다시 시도해야 하나요?
- 아니요. 절대 물러서면 안 됩니다. 그렇게 물러서면 보호자가 자신보다 서열 아래라고 생각하고 더 거칠게 거부합니다. 개에겐 서열을 확실하게 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훨씬 강하다.라는 걸 심어줘야 합니다. 말 안 들으면 더 세게 힘줘서 제압해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개와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로 서열을 정해야 합니다. 절대 약해지지 마세요.
보호자가 반려견을 너무 애 키우듯이 대하는 걸 보면 진료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자신을 소개한 수의사는 계속해서 더욱 강한 말투로 강조했다.
그날은 종합병원을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햇살이가 아예 눈을 뜨지 못했다. 햇살이는 시력을 잃었지만 늘 눈은 뜨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까지 뜨지 못하는 녀석을 보자 불안함이 밀려왔다.
한두시간 정도 기다려봤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병원에 연락했다. 응급센터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증상을 설명하며 혹시 오늘 진료가 가능한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현재 응급실에 안과 전문의가 없어서 지금 오셔도 정확한 진료가 어렵다고.
우리는 담당 안과 수의사에게 연락해 볼 수는 없냐고 물었지만 직접 연락처를 가르쳐 줄 수는 없고 병원 측에서 수의사와 통화를 해보고 다시 연락 준다고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돌아온 대답은 아무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을 거 같으니 안과 진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고.
물론 수의사 입장에선 휴일이 당연히 보장되어야겠지만, 그래도 일단 응급실에서 간단하게 증상을 확인하고 영상 통화나 전화로 응급 치료 방법을 전달받는 것도 안 되는 건가. 섭섭함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일요일에 문 여는 다른 병원들을 검색하고 전화했다. 하지만 다른 병원들도 안과 전문의가 없어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같은 대답만 반복했고, 수소문한 끝에 동생 지인의 도움으로 안과 검진이 가능한 다른 지역의 병원을 찾아냈다.
고속도로를 타고 톨게이트를 지나 찾아간 병원의 진료실 분위기는 이전에 경험했던 병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수의사는 진단과 치료를 마친 후에도 계속해서 서열과 힘, 제압을 강조했다. 옛날처럼 키워야 한다.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반려견의 문화 때문에 부작용이 더 많다. 반려견이 말 잘 듣게 회유하는 방법은 없다. 오직 힘을 보여줘라.
그의 방식은 너무 낯설었다. 수의사는 힘으로 햇살이를 제압했고 제압할수록 햇살이의 거부 반응은 강해졌다. 어머니는 차마 그 장면을 보기 힘들어서 대기실에만 계셨고, 나는 수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안약 두 개와 가루약을 추가로 처방받았다.
방식은 거칠었지만 다행히 댕댕이는 예전처럼 눈을 떴다.
하지만 집에서 그 수의사가 알려준 방식대로 시도해 봐도 여전히 안약은 넣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강압적인 일련의 행동들 때문에 댕댕이는 누가 근처에만 가도 자신을 괴롭히려고 하는 줄 아는지 도망갈려고 발버둥 쳤다. 그리고 며칠 뒤 예약한 날짜에 처음 갔던 종합병원을 다시 찾았다.
우리는 일요일에 있었던 상황에 대해 담당 안과 수의사에게 설명하면서 안약 넣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 말을 듣던 안과 수의사는 제대로 조치하지 못한 우리를 닦달했고, 우리가 전화했던 일요일은 일단 자기 병원으로 오라고 전해 달라고 했었다고. 집이랑 멀어서 오기 힘들 경우엔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면서 그날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
뭐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안과 수의사의 말이 진실인데 중간에서 전달하는 사람이 설명을 잘못한 건지, 미안한 마음에 수의사의 기억이 왜곡된 건지. 아니면 우리의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병원을 나서면서 우리는 혹시 우리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 그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우리의 기억은 분명했다.
댕댕이가 아픈 것도, 온종일 케어해야 하는 것도, 보호자 마음도 몰라주고 계속 안약을 거부하는 댕댕이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한데, 병원에서까지 이래야 하나.
답답함과 씁쓸함과 속상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렇게 답 없는 상황만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다시 용기를 얻게 된 건 세 번째 안과 전문 병원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이 병원은 일요일 응급상황으로 갔던 다른 지방 동물병원 수의사가 추천한 안과 전문 병원이다.
사실 우리도 이전에 그 이름은 알고 있던 병원이다.
꽤 오랫동안 동물 백내장 수술로 유명한 병원.
안과만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
너무 유명해서 오픈런해도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고 정식 예약하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 그런 점 때문에 진료 자체가 어려울 거 같은 것도 있지만, 다니고 있는 종합병원 담당의사가 의욕에 가득 차 있고 병원의 시설도 좋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도 충분한 치료와 수술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며 잊고 있던 병원이었다.
하지만 치료를 포기해야 할까 고민해야 하는 코너까지 몰린 마당에 이것저것 따질 여유는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오픈 한 시간 전에 동생이 먼저 가서 등록한 후에 오픈 시간을 기다렸고, 우리는 오픈 시간에 맞춰서 병원에 갔다.
듣던 대로 대기실은 보호자들로 가득 차 앉을자리조차 없었다. 그 낯선 분위기 속에 우리는 두 시간 정도 기다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딱 봐도 연륜이 있어 보였고 얼굴에는 인자한 웃음이 가득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후 댕댕이의 현재 상태는 심각한 편이지만 아직은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다만 수술을 하기 위해선 눈의 염증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에 몇 번씩 안약을 넣어줘야만 한다고. 그게 안되면 증상이 너무 악화돼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안약 넣을 때 격하게 거부하는 햇살이에 대해 하소연했다.
수의사는 일단 너무 사납게 물려고 하면, 수건이나 담요 같은 걸로 얼굴을 감싸서 고정시킨 후 안약을 넣으라고 했다. 두꺼운 걸로 감싸면 물려고 해도 아프지 않다고. 시범을 보이며 말씀하셨다.
- 보세요. 가만히 있죠? 이렇게 넣으시면 됩니다.
- 근데 병원에서는 이렇게 가만히 있지만. 집에서는 얼마나 발악하는데요. 물고 짖고 난리도 아니에요.
- 음. 병원에선 왜 가만히 있을까요? 여기가 낯설어서? 아니면 이렇게 높은데 있어서?
수의사 선생님은 집과 병원의 차이점에 대해 흘러가는 이야기로 하셨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동물병원마다 높은 테이블 위에서 댕댕이가 진료받거나 주사를 맞았었고 그때마다 얌전했다.
- 아. 높은 진료 테이블 위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그러면 집에서 높은 곳에 아이를 두고 한번 시도해 보시죠?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안약 넣는 거 중요하거든요.
- 네. 감사합니다.
지난 에세이에 밝혔듯이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우리는 2주간의 시간 동안 안과 수의사가 처방한 만큼의 안약 넣기에 성공했다. 가장 거부반응이 심했던 안약이 성공하자 인슐린 주사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병원을 찾았고 지금도 치료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실 우리는 한번 정하면 그대로 계속 가는 편이라 병원을 옮기는 건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응급 상황이 있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병원을 옮기는 상황을 부추겼다. 결국 그 과정에서 마침내 알맞은 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지막 병원만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세 군데 모두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
과격한 제압을 주문했던 수의사의 거친 방식은 수긍할 수 없었지만, 신선한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다른 병원에선 아무래도 보호자의 소중한 반려견이기 때문에 미처 꺼내지 못했을 매운 말에 제대로 한방 맞은 기분이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햇살이는 나에겐 가족 같은 존재고 되도록이면 수평적인 관계로 대하고 싶다. 다만, 꼭 해야 하는 치료에는 조금 더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했다. 예전엔 반려견의 고통에 너무 감정 이입해서 한번 치료를 시도해 보고 거부하면 녀석이 스트레스받을까 봐 쉽게 포기했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는 반려견이 격하게 거부하더라도 적어도 한두 번 더 시도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거친 수의사의 말을 곱씹어 보니, 가족으로서는 몰라도, 보호자로서는 강해야 할 때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 해도 되는 거라면 안 하겠지만, 몇 달간 혹은 평생 이어질 수 있는 안약과 인슐린 주사이기에 좀 더 강하고 독한 마음이 필요했고 거친 수의사와의 만남은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수의사도 마찬가지다.
처음 백내장을 진단해 준 수의사고 백내장에 관한 정보도 알기 쉽게 정리해 준 점은 만족했다. 넘치는 의욕과 적극적인 그의 행동은 신뢰를 줬었다. 다만 계속 이어진 상황에서 점점 불편한 마음이 생겨나 우리와 맞지 않았을 뿐.
내과 진료 때문에 계속 그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대기실에서 가끔 백내장 수술에 성공한 반려견 보호자들과 대화 나누는 그 수의사의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자신과 맞는 강아지와 보호자를 만나서 수술까지 성공했구나 하고.
그리고 마지막 병원.
언제나 바쁘고 어수선 하지만 직원들과 수의사 모두 친절하고 방문할 때마다 만족감을 느낀다. 가끔 다른 질환에 대해서도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연륜은 정말 무시할 수 없구나 감탄을 하게 된다.
수의사 선생님은 그냥 자신의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나는 매번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을 배우기 때문이다.
역시 해당 분야가 세상의 주목을 받기 훨씬 전부터 꾸준히 한 우물만 파온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는 걸 느낀다.
세상에 동물병원은 많지만 막상 반려동물이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갈만한 병원을 찾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만족할만한 병원을 찾기가 힘든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우리 햇살이에게 병원은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해 방문하는 일회성 공간이 아니라, 완치의 그 날까지 오랜 시간 함께 뛰어야 할 동반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 스쳐가는 인연은 쉽지만 오랜 시간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