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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 언어는 달라도 소통 방식은 같다.

by 하임

으르렁.


- 아빠가 너 좋다고 그러는 건데 으르렁 거리면 되냐!

으르렁... 멍. 멍. 멍. 햇살이는 아예 엉덩이를 치켜들고 고개를 숙인 채 본격적으로 짖기 시작했다.

- 내가 임마.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오며 가며 만져주고 얼마나 이뻐하는데!

멍 멍 멍.

아버지가 섭섭함을 토로할수록 햇살이는 지지 않고 더 크게 짖는다.

- 아이고. 자고 있던 애를 갑자기 만지니까 귀찮아서 그러는 거잖아요. 놔두고 가요.

그 장면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햇살이를 두둔하자 아버지는 에잇 잘해줘도 소용없는 놈.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후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그제야 햇살이는 짖는 것을 멈추고 다시 제자리에 엎드렸고 어머니는 멈췄던 설거지를 다시 시작하셨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버지에게 보인 햇살이의 행동은 식탁에 앉아서 밥 먹던 내가 봐도 좀 과했다. 너무 심하게 짖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신 후 나는 한마디 거들었다. 햇살아. 아무리 그래도 아빠한테 그러면 되냐.


아버지가 햇살이에게 특별히 밉게 해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지난 십여 년간 아버지와 햇살이의 관계를 지켜본 내 생각엔 소통 방식에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긴 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다.

무뚝뚝 지수가 높고 다정함 지수는 낮다. 직접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고 츤데레에 더 가깝다. 그러다 보니 다정함이 필요한 상황에선 서운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그 속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마음만은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과 그 뒤에 숨겨진 뜻을 파악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이 있지만 반려견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반려견은 애초에 사람과 언어로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짓, 표정, 톤으로 모든 것을 파악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말로 우리 햇살이 귀엽네. 착하네. 하더라도 억양과 톤에 따뜻한 리듬이 없다면 자신을 이뻐한다는 걸 못 느낄 수 있다. 부드러움이 사라진 거친 손길은 자신을 해하려는 위협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고. 하지만 아버지는 햇살이를 대할 때도 상대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이해보단 당신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셨다. 크고 무거운 손은 거칠게 햇살이의 등을 어루만졌고, 무뚝뚝한 억양의 이쁘다 귀엽다는 아버지의 의도와는 다르게 햇살이에게 전해졌다. 아버지는 늘 다정하고 따뜻하게 햇살이를 귀여워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아버지의 언어지 햇살이의 언어가 아니었다.


앞서 햇살이는 아버지와 일종의 논쟁을 벌였다. 녀석의 언어를 해석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한마디 할 때마다 지지 않고 멍. 멍. 멍 말대답한 걸로 봐선 아마도 논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이불 옆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고 있는 햇살이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는지 갑자기 앉아서 쓰다듬었다. 그리고 햇살이의 으르렁.

그들의 대화를 추측하자면 이렇다.

- 이제 막 잠들려고 했는데 왜 만져요! 멍.

- 아빠가 너 좋다고 그러는 건데 으르렁 거리면 되냐!

- 아빠도 막 잠이 오려고 하는데 옆에서 누가 건드리고 말 시키면 짜증 안 나겠어요? 그리고 만지려면 살살 만져야지 그렇게 하면 내가 놀라잖아요. 멍멍.

- 내가 임마.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오며 가며 만져주고 얼마나 이뻐했는데!

- 흥. 엄마랑 누나는 훨씬 더 다정하게 대해주거든요. 그리고 아까 내가 놀아달라고 할 때는 귀찮아하더니!! 아빠 좋을 때만 그러지 말고, 내 입장에서 생각 좀 해줘요! 멍멍멍.

- 에잇 잘해줘도 소용없는 놈.

- 흥. 멍.


이런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사실 반려견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진심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관계에는 불필요한 오해가 비집고 들어오기 좋은 환경이 된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A는 성격이 순하고 바람기도 없고 자기 일에도 성실하게 임하는 편이지만 이성친구를 제대로 사귀어본 경험이 없었다. A는 늘 어긋난 외사랑에 괴로워했었고 그걸 지켜보던 나는 항상 안타까웠다. 그런 친구를 위해 나는 꼭 괜찮은 이성친구를 소개해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나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 직원을 통해 마침내 소개팅을 주선했다. 직원의 친구와 내 친구 A 둘 다 소심한 성격이라 소개팅은 서로 부담 없도록 다 함께 놀다가 서로가 마음에 들면 나중에 주선자들을 통해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 우리는 만났고 나와 주선자는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두 사람을 이어주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 통하지 못했고 결국 연인이 되지 못했다.

나는 또다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술 한잔하자고 불렀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친구가 갑자기 화를 냈다. 내가 언제 위로해 달라고 했냐고. 위로는 상대방이 원할 때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왜 너 마음대로 판단하고 나를 위로하는 거라고 하냐.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뭔가를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외로워하던 녀석 기분 풀어주려고 그동안 애쓴 마음도 몰라주고 내게 그런 소리를 해? 섭섭함이 먼저 밀려왔고 섭섭한 마음이 지나간 자리엔 침묵이 남았다.

그 후로 며칠간 친구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처음엔 그 상황이 너무 이해가 안 됐다. 내가 볼 때 분명 친구에겐 제대로 된 연애가 필요해 보였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반응을 들어야 하나.

하지만 감정의 시간이 지나고 이성의 시간이 찾아오자 친구의 심정을 어느정도 인정하게 되었다. 진정한 위로란 상대가 필요로 할 때 건네주는 건데 나는 내 기준에서 지레 짐작하며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상대에게 내미는 손은 상대에겐 오지랖이나 위선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나는 며칠 후 친구와 다시 만났다.

나는 네게 위로가 필요한 줄 알고 내 생애 처음으로 소개팅까지 주선한 거였는데, 나 혼자 오버해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앞으로는 내 기준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을게. 대신 위로나 도움이 필요하면 네가 먼저 꼭 말해.

우리는 그렇게 화해했고, 여전히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날이후 나는 되도록이면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이게 그저 내 생각에 불과한 것인지, 정말 상대에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됐다.


아마 아버지의 경우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당신의 방식으로만 햇살이를 귀여워하려 했지 받아들이는 햇살이의 입장에 맞춰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셨다. 정작 햇살이가 놀아달라고 인형 물고 왔을 때 아버지는 TV 속 야구경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계속되는 햇살이의 요구에 마지못해 인형을 던져줬다. 하지만 눈은 TV를 향해 있었다. 그러니 햇살이는 인형을 물어오기를 포기했고 구석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TV가 끝나고 볼일을 보고 난 후에야 엎드려있는 햇살이에게 다가가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귀여워해주니까 햇살이의 꼬리가 움직일 거라 예상하셨겠지만 햇살이는 꼬리 대산 입을 움직였다. 으르렁.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대할 때. 그리고 상대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내가 아닌 상대의 언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내 생각 안에서. 내 기준으로 이렇게 하면 상대가 좋아할거라 단정짓고 하는 행동은 상대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나를 위한 행동이다. 상대를 위하고 사랑한다면 나의 귀찮음을 억누르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무언가를 잠시 희생하며 상대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이 온전히 상대에게 전해지고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


그날의 내 친구.

그날의 햇살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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