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공양미 삼백석이요?
네.
그럼 요즘 돈으로는 얼마죠?
....
얼마냐고요. 왜 갑자기 아무 말을 안 하세요.
배꼽아래에서부터 점점 끓어오르는 답답함에 윽. 윽. 몸부림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역시 꿈이었네. 안 그래도 이게 무슨 개꿈 같은 상황인가 싶었는데.
씩씩 거리며 꿈속 장면을 다시 떠올려봤지만 공양미 삼백석을 요구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던 걸로 봐서 수의사라고 짐작만 할 뿐.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싶지만 잠에서 깬 한동안 가슴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가 걸려있는 듯했다.
검색창에 '공양미 삼백석 가격'을 입력하고 엔터를 누른다.
꿈에서 깰 때까지 끝내 듣지 못한 최종 가격.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인지 너무 궁금했다.
검색 결과 쌀 한 가마니는 현재 기준으로 144kg며 20kg 가격을 5만 원으로 봤을 때 1억 8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마트에서 내가 본 가격이 4만 원이었다는 걸 감안하고 삼백석이니깐 대량 구매인 점을 감안해서 할인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9천만 원에서 1억이라는 말이다.
1억이라니. 아무리 꿈이라지만 하얀 가운 그 인간 완전 사기꾼이네.
뒤늦은 분노와 함께 그 옛날 눈 뜨는 조건으로 삼백석을 요구받은 심청이에게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가난한 심청에게 요즘 가치의 1억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삼백석의 대가를 떠나서 그 괴로운 마음은 인당수에 몸이라도 던지고 싶을 만큼 실의에 빠지지 않았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자주 꿨다. 키 크려고 그런다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은 물론이고, 왜 그런 꿈을 꿨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황당무계한 SF 장르나 귀신에게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땐 관련된 꿈을 종종 꾸기도 했다. 방금 꾼 공양미 삼백석도 요즘 주위에서 백내장 수술 가격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햇살이의 상태가 악화되고 안약마저 거부하던 때는 오직 수술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상태가 호전되고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 되자 수술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백내장 수술 비용은 한쪽 눈당 최소 2백만 원 이상이었다. 햇살이는 두 눈 모두 백내장이니깐 대략 5백만 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어머니와 동생은 햇살이가 예전처럼 시력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감당해야 한다고 했지만, '반려'라는 끈끈한 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햇살이'가 아닌 '너희 집 개'라고 부르는 주변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개한테 무슨 그런 큰돈을 쓰냐. 주로 이런 뉘앙스였다.
아무래도 지인들은 '반려견'을 키워본 경험이 없고 개는 여전히 '집 지키는 존재'의 개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만, 햇살이를 키우는 동안 내가 '반려견'은 '개'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라고 주위에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기 때문에 직설적인 조언보단 순화된 표현을 썼을 뿐.
그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수술한다고 꼭 성공해서 시력을 되찾는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고, 개에게 시력은 사람만큼 절대적이지 않다고. 오히려 냄새와 소리를 통해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하던데 그렇게 큰돈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 하는 식이었다. 물론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나도 반려견을 키우지 않았다면, 사람과 개 사이의 정서적 교감은 TV 속 유별난 견주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판단하며, 미쳤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려견과 오랜 시간 교감해 온 애견인들은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수술을 선택하고 싶어 할 것이다.
매번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빠르게 뛰어와 꼬리 흔들며 안아달라고 뛰어오르던 녀석.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자든가 말든가 방문 앞에 서서 어서 일어나 자기에게 아침 인사를 하라고 작은 목소리로 멍.- 그래도 매너가 있어서 새벽에 크게 짖지는 않는다-하며 깨우던 녀석.
그러나 실명 이후 햇살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를 찾지 못해 전혀 엉뚱한 곳에 서서 꼬리 흔들며 낑낑거렸고, 내가 다가가서 햇살아 거기 아니야.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해도 방향을 찾지 못해 제자리에서 당황하기만 하는 녀석을 끌어안을 땐 매번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억눌러야만 했다.
아침엔 더 이상 내방을 찾아오지 못했고 내가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났지만 물도 못 찾아서 아예 물 먹는 것을 포기한 적도 있었고 벽에 부딪히는 건 일상이다.
백내장 판정을 받은 날부터 햇살이가 부딪힐만한 집안 곳곳에 충격 방지 스펀지를 모두 붙여서 부딪혀도 아프진 않겠지만, 움직이면 자꾸만 부딪히니 의기소침해져서 아예 움직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면 늘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보니 수술하지 말까? 하는 고민자체가 미안했다.
그래서 햇살이 상황을 알고 있는 최측근 몇 명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햇살이의 상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에게 상황을 말할 때마다 늘 같은 반응에 같은 설명하는 것도 지치니깐.
이런 상황들 때문인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공양미 삼백석 꿈을 꿨던 거 같다.
하지만 꿈을 꾸고 난 후로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술 결정과는 별개로 비용이 꽤 부담된 건 사실이었는데 그래도 공양미 삼백석은 아니니깐.
9천만 원에 비하면 저렴한 거니깐.
다행히도 오직 기적에만 배팅하는 막연한 심봉사 시대는 아니니깐.
이런저런 생각은 모두 잊고 부디 백내장 수술이 대성공해서 크고 까만 그 이쁜 눈으로 다시 예전처럼 우리 식구들을 볼 수 있길. 더 이상 벽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고 목마를 때 물컵으로 거침없이 달려가서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