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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는 것과 닮았다.

반려견을 키우는 것도 육아다.

by 하임

댕댕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짧고 뭉툭했던 다리는 더 이상 바닥에 배가 닿지 않을 정도로 길어졌다. 이목구비 없는 찐빵 같았던 얼굴은 피노키오의 코처럼 점점 앞으로 나와 입체적인 모습을 갖춰갔다.

예전엔 옆에서 보면 평면 위에 작은 코만 붙여놓은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미끈한 'ㄴ' 모양으로 콧대가 높아져 제법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다. 누렇기만 했던 털 속에선 하얀색과 검은색 털이 섞여서 자라났다. 마치 색채 전문가가 디자인한 듯 눈 주위엔 하안색이, 머리에서 콧등까진 까만 털이 이어지고 허리엔 갈색과 흰색, 검은색이 조화롭게 섞였다.

이것도 생존본능에 의한 진화 같은 걸까. 처음 데려왔을 때 누런 못난이 곰인형 같다고 워낙 놀려서 그런지 녀석은 보란 듯 이제 제법 멋있어졌다.

너무 빠르게 변한 모습 때문에 미리 사진을 많이 찍어두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왜 엄마 아빠들이 아이가 크고 나서야 어릴 적 사진을 많이 찍어두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렇게 빨리 클 줄 알았나.. 계속 귀엽게 못생긴 아기 강아지 모습일 줄만 알았는데 성장하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반려견을 키운다는 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닮은 점이 많다.

빠르게 변하는 외형도 그렇지만 케어하는 과정도 그렇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각종 예방 접종을 줘야 하듯이 반려견도 때에 맞춰 맞아야 하는 백신들이 많다. 갓 태어난 얼마간은 어미개로부터 물려받은 항체로 버티지만, 일정 기간 이후로는 새로운 세상 속 병균과 맞서 싸울 백신을 맞아야 한다.

보통 생후 6주부터 2주 간격으로 16주까지 혼합(DHPPL) 백신, 코로나 장염, 켄넬로프, 인플루엔자, 광견병 백신 순으로 각각 여러 번 접종해야 하며 그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접종한다.

예전에 키웠던 집 지키던 개들은 주사 한 대 안 맞히고도 별 탈 없이 잘 키웠는데..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전 개들의 평균 수명이 10년 정도였던 걸 감안한다면 20년 30년 건강하게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주인이 직접 모든 것을 챙기면 가장 좋지만, 그 과정이나 종류가 복잡하게 느껴지면 그냥 동네 동물병원 한 군데를 단골로 만들면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접종 시기를 알려준다. 병원에 따라 권하는 백신의 종류가 더 추가될 수도 있으니 맞으라고 한다고 '묻지 마 접종'하지 말고, 꼭 맞아야 하는지 그 주사는 어떤 예방 효과가 있는지 물어보고 결정하면 된다.


집안에서 똥오줌을 제대로 가릴 수 있게 배변패드도 교육시켜야 하고 사료도 신경 써야 한다. 의외로 많은 사료 업체들이 쓰레기 같은 재료로 구색만 갖춰 제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우리도 몇 번이나 사료와 간식을 바꿨다. 몸에 좋은 걸 찾아서 먹이진 못하더라도 해가 되는 걸 먹일 수는 없으니깐.

사료뿐만 아니다. 평소에 강아지에게 줘도 되는 음식과 독이 되는 음식을 잘 가려야 한다. 육아할 때 아이에게 먹일 이유식과 유해성분 없는 간식을 고르듯이 신경 써야 한다. 설탕이나 소금이 들어간 음식은 먹이면 안 되고, 사과 씨나 초콜릿은 강아지에게 독과 같다. 일부 음식은 알레르기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나열하니 엄청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관심과 애정을 가지면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육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임신, 출산, 육아 관련 정보를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듯이. 연세 많으신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증상에 따른 관련 정보를 검색하듯 반려견도 마찬가지다.

'반려'의 뜻은 짝이 되는 동무. 식구 같은 동반자다. 남들이 다 키우고 SNS에 인증하니깐 나도 그냥 입양해서 집에 뒀다가 필요할 때만 가지고 놀기 위한 인형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기 싫은 숙제와 자발적인 관심의 차이는 이런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반려'의 관점에서 강아지를 대하면 '반려견 한 마리를 들인다는 것은 아이 한 명 키우는 것과 같다'는 말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심지어 집에 오면 아이와 놀아주듯이 반려견과 놀아줄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아이가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리듯 반려견도 하루 종일 주인만을 기다린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오두방정 떨면서 달려오는 속도와 회전하는 꼬리의 요란스러움이 그 기다림을 증명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기다렸던 주인이 귀가하면 반려견은 그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바라듯 관심을 요구한다. "놀아주세요."라고 직접 말은 못 하지만, 주인의 반가운 리액션이 없거나 애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옆에 붙어서 짖거나 머리를 바닥에 비비며 불만을 표출한다.

그렇다고 아이가 있는 집처럼 한 시간 두 시간 지쳐 잠들 때까지 놀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성의가 중요하다. 하루에 십 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오롯이 반려견에만 집중해서 놀아주면 된다.

말 안 통하는 동물이지만 반려견도 자기에게만 집중하는지, 딴짓하면서 놀아주는 시늉만 하는지 다 안다. 한 손으로 핸드폰 보고 다른 한 손으로 성의 없게 던져주는 인형은 물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성의 없다고 달려들며 짖는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자신에게만 집중해 달라는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다.-아마 사람이었다면 분명 한 시간짜리 잔소리였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려놓고 놀이에 다시 집중해서 던져준 인형은 잘 물어오는 걸 보면.


그러다 보니 반려견과 무엇을 하고 놀지도 진심으로 고민하게 된다.

맨날 인형만 던져주면 나도 지겹고 반려견도 지겨울 테니깐.

어떻게 하면 잘 놀아줬다고 소문날까? 애견용품샵에서 판매하는 각종 애견 장난감들, 하다못해 고양이랑 놀아주는 낚싯대 같은 것까지 구입해 봤지만 댕댕이는 구입한 당일 하루만 관심을 보일 뿐 금방 싫증 냈다.

그래서 놀이 용품 구입은 그만두고 내가 만든 놀이가 하나 있는데 '두더지 잡기'다.

우리 집 댕댕이는 한 살이었을 때나 열 살인 지금이나 이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자주 하더라도 집중도가 가장 높다.


놀이의 방식은 이렇다.

먼저 이불을 하나 준비한다. 그 속으로 손을 넣고 반려견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마치 두더지가 땅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러면 댕댕이는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상체를 낮춘 채로 볼록 튀어나온 이불속 물체를 쫓아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앞발로 잡거나 물기도 하는데 내 손은 이불속에 있으니깐 물려도 아프지 않다.-만약 아프면 더 두꺼운 이불을 준비하거나 장갑을 끼도록 하자- 움직이다가 댕댕이가 물면 빠르게 옆으로 옮기고, 또 물면 앞으로 뒤로. 이런 식으로 계속 움직인다.-성의 있는 움직임이 중요하다- 그러면 반려견은 계속해서 이 신기한 무언가를 잡으러 다닌다. 마치 흙속에서 올라오는 두더지 잡듯이.

단점은 이 놀이는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반려견이 좋아한다. 어떤 날은 이불 위에 앉아있으면 자연스럽게 댕댕이가 곁으로 와서 그 놀이를 하자고 먼저 자세를 잡기도 한다. 그렇게 진지하게 일정 시간 동안 놀아주면 녀석은 칭얼거리거나 귀찮게 하지 않고 자기 자리로 가서 얌전하게 잔다. 스트레스도 풀고 하루 종일 기다린 주인과의 시간도 충분히 보냈다고 만족하는 표정으로.-주인이 놀아줬다고 생각하는 건지, 자기가 주인과 놀아줬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 어떻게 안 놀아 줄 수 있겠는가.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놀이에 진심인 녀석을 보면 어느새 나도 함께 빠져든다. 행여나 빠져들지 않더라도 빠져든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하루 종일 식구가 오기만을 기다린 반려견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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