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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수술.

밤하늘처럼 검고 별처럼 빛나는 너의 눈빛을 다시 찾기 위해.

by 하임

수술 후 3주가 지난 후 실밥을 풀었다.


원장 선생님은 다음 수술날짜는 상태를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하자고 하셨다. 전신 마취를 하는 수술은 체력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므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나는 동의했다. 더군다나 죽을 고비를 경험한 햇살이는 더욱더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햇살이의 체력회복만큼이나 원장선생님의 마음의 준비도 필요해 보였다. 지난 수술에서 선생님도 꽤 많이 놀라신 거 같으니깐. 선생님은 그날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늘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셨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원장 선생님의 잘못만은 아닐 텐데.


내가 그분을 지칭할 때 '수의사'가 아닌 원장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분의 인간적인 면. 늘 미안해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이 분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의료 기술자가 아니라 진심으로 동물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의사구나. 하는 마음을 느꼈다. 오히려 내가 "아니에요. 선생님. 수술엔 언제나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잘 대처하셨잖아요. 다음번엔 꼭 더 잘 될 거예요." 하고 응원하게 되는.

그러면 선생님은 "아이고 좋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힘을 얻게 되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를 '원팀'이라 생각하게 됐다. '햇살이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결성된 어벤저스'

캡틴 원장선생님은 다음 수술 성공을 위해 의학적 노력을 하고, 보호자인 나는 그분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한다. 게임 캐릭터로 비유하자면 아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힐러 역할, 아이언맨의 자비스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햇살이도 그런 노력에 호응하듯 빠르게 회복되어 갔고 드디어 두 번째 수술 날짜가 잡혔다.


한번 수술 준비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준비가 수월했다. 수술 일주일 전부터 추가된 안약을 정해진 시간에 투약했고 혈당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렇게 차근차근 D-DAY를 향해가던 어느 날. 어머니가 햇살이의 사료와 배변 패드가 거의 안 남았으니 나에게 새로 주문하라고 했다.

나는 즐겨찾기에 저장된 단골 쇼핑몰에 접속해서 언제나처럼 같은 제품, 같은 수량을 선택 후 결제버튼으로 마우스 커서를 가져갔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검지 손가락이 멈췄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망설임이 손가락을 붙잡고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고 속삭였다.


선택한 수량인 한 달 치를 사용할 수 있을까?


해서는 안 되는 생각.

세상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불결하고 불운한 생각.

그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왔던 은밀한 뭔가를 들킨 것처럼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머릿속에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정말 그렇게 될까 봐 꾹꾹 눌러왔던 검고 축축한 수술에 대한 불안감. 이번엔 정말 아무런 돌발상황 없이 정말 잘될 수 있을까? 설마 이번에도 수술 중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지난번엔 그래도 잘 넘겨서 살아났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면...

나는 손가락을 마우스 버튼에 올린 채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방 문을 열면 이 불안함이 문밖으로 빠져나가 집안의 가족에게까지 달라붙을 거 같아서.



멈췄던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수량을 수정한다.


- 버튼이 아닌 + 버튼을.

평소보다 더 많은 수량을 선택하고 결제버튼을 눌렀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가 브라우저에 표시됨과 동시에 결제 문자가 왔다.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수량을 줄이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거라면, 수량을 늘리는 건 최상의 상황을 확신하는 것일 테니깐. + 버튼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의 부적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당연히 성공하겠지. 모두가 이렇게 으쌰으쌰 노력하고 있는데. 원장 선생님은 분명히 방법을 찾아내실 거고, 햇살이는 그 시간을 잘 버텨낼 거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많은 수량을 주문해서 수술이 백 프로 성공한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그러면 정말 그렇게 되겠지. 생각하는 대로 우주의 기운이 반응한다는 말도 있잖아. 이렇게까지 했는데 결과가 나쁘면 하늘에 계신 분께 남는 개수만큼 손해배상 청구할 거야. 우리 햇살이 살려주실 건지 손해배상 하실 건지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선택하세요.



수술 당일 아침.

이전처럼 아침 사료와 인슐린 주사를 평소의 절반만 줬고 예약된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에 앞서 간단한 눈 검사를 했고 오늘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는 결과를 받았다. 수술 예정 시간은 14시. 우리는 수술 시간이 될 때까지 대기실에서 네 가지 안약을 10분 간격으로 번갈아가며 투약했고 햇살이의 다리엔 지난번처럼 링거가 꽂혔다.

14시가 되자 원장 선생님이 수술 대기실로 올라오셨고, 햇살이는 마취를 위해 산소방으로 갔다. 그리고 수술 동의서 작성을 위해 원장 선생님과 만났다. "최선을 다해서 꼭 좋은 결과 있도록 하겠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얼굴엔 자신감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잘 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당연히 성공하실 테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은 상황이 생겨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으니깐 선생님도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실력 발휘 해주세요." 선생님은 보호자님의 응원에 힘입어 꼭 좋은 소식 가지고 돌아오겠다며 미소 띤 얼굴로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대기실의 LCD 화면이 켜졌고 수술이 시작됐다.

지난번에 수술 과정을 두 번이나 봤기 때문에 나는 수술 과정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는데, 수술의 준비 과정에서 지난번과 다른 시술 과정이 몇 번 보였다. 그 이후로는 같은 순서.

40분쯤 경과하자 LCD 화면은 꺼졌고, 선생님이 수술실 밖으로 나오셨다.

선생님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마치 굉장히 기쁜 일이 있을 때 자신의 걸음보다 먼저 앞서가려는 아이의 얼굴처럼.


"햇살이 수술은 아~주 잘되었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에요. 선생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동안 보호자님들이 더 마음 고생하셨죠."

"아이고 아닙니다. 선생님. 그동안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는데 선생님 마음고생도 심하셨던 거 같던데요."

"사실 저도 이번 수술은 날짜가 다가올수록 발을 쭉 펴고 못 자겠더라고요. 여러 방면에 대해 고민해 보고 이번엔 지난번 보다 과정을 몇 개 더 추가해서 시도해 봤더니 아주 성공적으로 잘 끝마쳤습니다."

"아. 안 그래도 LCD화면에 지난번과 다른 장면이 몇 번 보여서 의아했는데 역시 뭔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신 거군요. 오늘 밤은 아주 편안하게 주무시겠네요. 선생님."

"아. 그럼요. 오늘 밤은 아주 숙면할 거 같습니다. 허허. 햇살이는 마취 깨면 바로 밖으로 나올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너무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잠시 후 햇살이는 간호사의 품에 안겨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를 안고 나오는 간호사의 표정도 지난번에 비해 아주 밝았다. 그동안 제대로 대화할 기회는 없었지만 간호사도 지난번 수술의 돌발상황에 많이 안타까워했고, 그래서 이번 수술에 앞서 긴장을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한테 말씀 들으셨죠? 햇살이 수술이 아주 잘되었어요." 웃음 가득한 얼굴로 간호사가 말했다. "아. 네.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신경 많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회복실에서 링거 좀 맞고 있으세요" "감사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햇살이는 눈을 완전히 떴다. 회색빛 가득이었던 오른쪽 눈도 이제는 검은 유리구슬처럼 맑고 선명했다. 지난번에는 수술 후 며칠이 지나서 완전히 보이는 거 같았는데, 이번에는 바로 앞이 보이는 듯 신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른쪽 왼쪽 모두 밤하늘처럼 검고 선명한 눈빛.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햇살이는 마치 처음 보는 세상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내 눈을 번갈아가며 지긋이 바라봤다. 마치 그동안 먹구름 가득했던 우리의 회색빛 하늘을 자신의 맑고 검은 눈동자로 정화시켜 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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