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신 Dec 07. 2020

푸른빛(2/3)

Q-Bot, 영혼의 소리

https://brunch.co.kr/@desunny/99

(1편에서 이어집니다)




꿈에서 나는 빛이 되었다. 푸른색 빛이 되어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그때, 누워 있는 내 앞에서 울고 있는 희수와 도영을 보았다. 그랬다. 나는 내 몸과 희수와 도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슬프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푸른색 빛 한줄기가 되었음을 알았고 곧 다른 거대한 푸른빛과 하나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황홀했가. 그 순간, 내 푸른빛이 다른 커다란 빛과 하나가 되려던 찰나, 그 찰나에 나는 잠을 깼다.    

  

여느 때와 같은 새벽,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늘도 희수는 편안히 잠을 자고 있다. 그녀를 미워하는 마음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증오의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손에는 어느덧 베개가 들려있었다. 손이 떨렸다. 흐, 흐흑.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이, 이 감정은 무엇일까. 얼마나 희수를 사랑했는데, 아니 사랑하고 있는데.      


여느때와 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커피 한잔과 식빵 한쪽. 가볍게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다. 그녀는 오늘도 안에서 논문을 보고 있었다. 한결같은 저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상념에 빠져 차창 밖을 바라봤다. 차는 어느새 잠실대교를 지나 마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오늘도 Q-Bot이 뉴스를 요약해주고 있었다. 역시 재미도 없는 생명공학에 대한 뉴스였다.      


「생명공학! 역사 속의 오늘입니다.」     


「오늘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키드 부(Kid Buu)가 스스로 복제인간임을 밝혔던 날입니다. 30년 전 오늘, 캐나다의 래퍼인 키드 부는 자신이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라고 커밍아웃했습니다. 이 폭탄선언으로 인해 키드 부를 복제한 클론 에이드는 세계의 갑부들로부터 지원과 지지를 받아 세계 1위의 생명공학 기업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이 된 것은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겠죠.」  

    

Q-Bot이 마치 사람처럼 아내의 회사에 대해서 말했다. 클론 에이드. 젠장, 어쩌다, 생명 복제하는 회사에 다니는 아내와 살게 된 것인지. 그리고 Q-Bot은 왜 마치 사람처럼 말하는 것인지.

     

「20년 전 오늘, 인류는 세계 최초로 인간의 뇌지도(Brain Map)를 완성했습니다. 수백조 개의 뉴런과 시냅스가 연결된 인간 뇌는 21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이 점령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구글과 손을 잡은 클론 에이드 사가 메모리 기반 빅데이터 병렬 처리 기술과 딥러닝 기술을 이용하여 뇌 속의 모든 기억들을 디지털 정보로 만들 수 있는 뇌지도를 만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의 기억을 복원할 수 있으며, 심지어 죽은 이들의 기억을 메모리 칩에 보관하여 마치 사진첩처럼 꺼내 보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대단하죠?」     


대단하죠? 대단하죠라니. 사람도 아닌 녀석이 저렇게 말하다니. 역시 재미없다. 생명을 복제하고, 도대체 기억을 메모리 칩에 보관하는 것이 인간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철학, 그것도 힌두 철학 교수인 나에게는 ‘인간이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였다. 신이란 무엇인가. 신이란 우리 몸에 내재한 빛이다. 그 빛 하나하나는 모두 신이며 인간이 죽은 후에는 원류로서의 빛에 합일을… 하게… 되는….      


꿈. 그래. 나는 꿈에서 푸른빛이었다. 빛이 된 나는, 내 몸과 아름다운 아내 희수와 친구 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커다란 빛에 합일을….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지 않은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아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은 당황한 듯, 아내가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논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일 밖에 모르는 여자. 나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Q-Bot은 여전히 무언가를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이유 없이 뒤통수가 간지러워 긁적거렸다.     


꿈이 진전됐다. 내가 푸른빛이 되어 아내와 도영을 내려 다 보던 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푸른빛이 되었던 나는 거대한 푸른빛과 합일이 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도영이가 하얀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내 육신의 머리에 하얀 헬멧을 씌웠다. 희수는 입을 굳게 다물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영은 헬멧과 연결된 컴퓨터의 엔터키를 ‘탁’하고 쳤다. 모니터에서 알 수 없는 코드 조각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푸른빛이 된 나는 거대한 빛의 원류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거대한 푸른빛에서 떨어지기 싫었지만 어쩌질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사방이 막힌 공간 속에 갇혔다. 완전한, 완벽한 갇힘.      


“헉!”      


잠에서 깼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거리는 사이에도 희수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아름다운 희수. 내가 사랑했던 희수. 그 희수가 점점 미워지고 있다. 미움의 감정이 올라오며 손이 떨렸다. 어느새 베개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순간, 문뜩 정신을 차렸다. 한 숨을 쉬며 밖으로 나와 멍하게 베란다 밖을 내다봤다. 멀리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벌써 6시가 넘었다. 오늘부터 여름 방학이다. 희수는 출근을 할 것이다. 내게 혼자만의 시간이 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쉬고 싶었다.      


희수가 출근을 하고 오전 내내 안락의자에 앉아있었다. 간밤에 꾸었던 그 이상한 꿈은 도대체 무엇인지. 거대한 빛을 두고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 급류에 휩쓸려 심연으로 빠져드는 힘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도대체 그 꿈은 무엇일까. 왜 자꾸 이런 이상한 꿈을 꾸는 것일까. 또, 그리도 사랑하는 희수가 미워지는 이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호흡이 점점 느려졌다. 느린 숨을 쉬고 있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그 주기가 느려지며 생각이 점점 더 깊어졌다. 누가 옆에서 봤다면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숨이 느려지다 못해 거의 멈출 때가 되었을 때, 완벽한 갇힘에서 풀어져 나오던 기억이 떠올랐다. 완벽한 갇힘에 빨려 들어갈 때와 비슷한 빠른 속도였다. 태풍이 불어 치는 날 방류하는 거대한 댐의 물과 같았다. 급류에 휘말려 저항할 수 없는 속도로 완벽한 갇힘에서 풀려났다. 그 느낌이란….      


눈을 떴다. 나에게 분명, 어떤 일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의 서재로 갔다. 문이 잠겨있었다. 손잡이를 힘차게 밀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베란다로 돌아갔다. 역시 창이 닫혀 있었다. 왜, 모두 잠겨있을까? 원래 잠그고 다녔던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15년째 같이 살고 있지만, 그녀의 서재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나는 비상키를 찾아 집안의 모든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딘가 있었다. 분명히. 싱크대 안쪽 서랍장에서 열쇠 꾸러미를 찾았다. 열쇠 꾸러미에도 그녀 서재 키가 없다. 다른 키들은 모두 있는데. 나는 드라이버를 찾았다.      


서재의 문고리를, 문고리를 뜯어냈다.


(계속)

https://brunch.co.kr/@desunny/101


매거진의 이전글 푸른빛(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