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다가 잠깐 눈을 돌렸어요. 벽 한쪽에 작은 벌레가 한 마리 기어가다가 그대로 멈추네요. 내가 본걸 아는 걸까요? 지금 이 순간, 벌레와 나 사이에는 어떤 기류가 흐르고 있는 걸까요?
벌레와 사람 사이에도 뭔가가 흐르는 데.. 사람들 사이에는 훨씬 더 많은 무언가가 흐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왠지 모르게 불편한 사람이 있어요. 또, 주는 것 없이 좋은 사람이 있고요. 떨어지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죠. 사랑이든 미움이든 타인과 나 사이에는 감정이 존재해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내가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 데 전화가 걸려오는 신기한 경험. 널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면, 그 사람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죠. 보고 싶다고. 서로의 감정은 거리를 따지지 않나 봐요. 오늘은 유난한 밤이에요.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당신이 걱정스러워요. 당신은 복잡한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을 걱정하겠죠. 보고 싶네요. 당신과 저는 24년의 시간을 같이 보냈죠. 그리고 제가 군에 다녀온 후에 직장을 잡기 전에 1년의 시간을 또 같이 보냈어요. 그러니까 대략 25년 정도를 같이 보냈네요.
세월은 참 빠르네요. 우리가 떨어져 살아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20년,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답니다. 모두 당신이 저를 잘 보살펴준 덕분이에요. 어렸을 때는 당신을 사랑하기도 했고 안쓰러워하기도 했어요. 많이 고마웠어요. 그런데, 어렸지만 그래도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서, 남편을 보내고 여섯 아이들을 혼자서 키우는 당신에게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어요.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확하게 반반 성별이 나뉜 여섯 아이들을 키우며 겪었을 당신 인생의 순간들과 그 순간들에서 느꼈을 마음의 파도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어요.
"계우 아 둘 키우는기, 뭐가 그리 어렵노?"
마치 당신의 말이 들리는 것 같네요. 음, 글쎄요. 제 아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당신도 그랬겠지만 '내 아이를 남의 아이처럼 보기'는 참 어렵네요. 그저 내 아이가 남들보다 잘 되기를 바라는 알량한 마음이 몸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겠죠. 뭐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고, 이놈의 대한민국 경쟁사회가 만든 걸 수도 있고요.
"얼른 커부렀으면 좋겠네. 걱정 좀 덜게"
"뭐라카노, 야야. 그기 될 줄 아나.. 니 형은 머리가 반백인데도, 내가 걱정이 돼가 잠이 안 온다카이. 나이 먹으면 먹는 데로 걱정이 더 커지는 법이데이"
얼른 애가 커버렸으면 좋겠다는 저의 말에 당신이 한 말이에요. 그래요. 당신의 말처럼 자식 걱정은 끝이 없겠죠? 이런, 열한 시가 넘었는데 아직 딸들이 자질 않아요. 아이들이 내일 피곤할까 걱정이 돼요. 지금, 당신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키고 홀로 남은 집에서 우리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미안해요. 자식이 여섯인데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있는 형제가 없네요. 지금 이 순간, 어머니 당신이 보고 싶네요. 당신은 잠자리에 들었겠죠. 하지만 알아요. 오늘 밤 제가 당신의 꿈에 나타날 것을. 왜냐하면 그게 바로 서로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니까요.
당신을 본지 너무 오래됐네요.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기 전, 대구 집에서 봤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보질 못했어요. 그러고 보면, 겨우 1년에 네다섯 번 밖에 얼굴을 보질 못하네요. 날짜로 치면 일년에 열흘 정도. 떨어져 지낸 20년 동안 겨우 200일 밖에 보질 못했네요. 와, 겨우 200일. 매일 당신 품에 안기고 싶어 하던 어린 날도 있었는데, 이제는 겨우 일 년에 열흘 밖에 보질 못하다니.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요? 미처 곱하기를 하기도 전에 당신과 보낼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먼저하네요. 아, 무심한 시간이 밉네요.
어머니, 당신께 보낼 편지를 다 써가는 데.. 아직도 벌레는 꿈쩍 하질 않아요. 내일 당신과 통화 할 때도 저러고 있으면 좋겠네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