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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Sep 19. 2020

당신은 꿈꾸던 삶을 소유하고??

마곡 나들이

오랜만에 마곡 나들이를 했다. 직장생활 내내 멘토로 삼은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곳 마곡 근처의 회사를 다녔다. 집에서 회사를 가려면 성산대교나 가양대교를 건너야 하는 데, 나는 차가 좀 덜 막히는 성산대교를 주로 이용했다. 간만의 마곡 나들이 길도 성산대교로 택했다. 성산대교를 지나 공항대로에 진입하면서 한 시 방향에 있는 골든 서울 호텔의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은 꿈꾸던 삶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무의식 속에서 멍 때리고 있던 나는 '저게 무슨 개.. 아니 말도 안되는 소리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삶을 소유하다니, 무슨 아파트도 아니고.. 분명, 아파트나 오피스텔, 아니면 수익형 호텔의 분양 광고일 것이다.


내가 아는 상식에서, 삶이란 '산다'라는 동사를 명사형으로 바꾼 말이다. 즉, 삶은 어떤 존재의 행위를 말한다. 행위는 하는 것이지 가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행함을 통해서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경험을 갈구한다. 빡빡한 도시생활 속에서 주말만 되면 사람들은 꽉 막힌 도로를 뚫고 무언가 체험을 하기 위해서 자연으로 나간다. 딸기 따기 체험, 도자기 만들기 체험, 조개 캐기 체험, 연 만들기 체험. 꽉 막힌 도로를 운전하고 돌아오며 "야, 오늘 많은 경험을 했어" 하고 말한다.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성장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뭐, 그렇다. 내 결론은 "삶은 소유가 아니라 행하는 것이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많이 소유하는 걸 최고로 친다.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비싼 아파트와 건물, 있어 보이는 차를 가지길 원한다.


나도 이런 것들을 위해서, 뭐..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꽤 많은 노력을 했다. 나름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있는 돈 없는 돈 쥐어짜 내서 대학원에 가고 자격증도 땄다. 한 마디로 피곤한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을 입학한 후에 스펙을 쌓으려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리고 겨우겨우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이 된 후에는 조직에서 정해진 일, 시키는 일을 한다. 그렇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월급이 입금된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숫자, 몇 번 외식하고 아이 학원비 대고 약간을 저축할 수있는  정도의 숫자가  통장에 찍히면.. 잠시 또 괜찮아진다.


회사에 다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리는 "회사형 인간"이 된다. 회사형 인간은 분업에 익숙한 사람이고, 나 보다 시스템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는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 아니, 사실은 티 안 나게 일 안 해도 된다. 전체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모든 기계가 기름을 치고 부품을 갈듯이 회사의 효율성을 위해서 회사도 업무를 자동화하고 구조조정을 한다. 비용의 많은 부분을 인건비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누구나 회사라는 시스템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 이런.. 지저스..


회사형 인간은 그간 맡은 일만 하다 보니, 다른 일을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회사생활에만 전념하면 경험의 폭이 좁아지고, 그로부터 쌓을 수 있는 지혜에 한계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 흘러.. 회사를 벗어날 때가 되면,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기승전'닭'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9만 개에 육박한 치킨집과 매년 8천 개가 폐업을 하는 시장으로..


이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마곡에 도착했다. 서울 마곡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허허벌판이었지만 연구단지가 조성되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급변한 곳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최근 10 년 전 까지도 마곡에는 논밭이 있었으며 발산역 근처의 7층 건물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어둠 속에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파트와 사무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황금, 노른자 땅이 되었지만..


나는 차에서 내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은 높고, 내 마음 속에는 행글라이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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