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다가오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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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오늘은 월요일. 아침에 전철역까지 첫째를 데려다줬다. 전철을 갈아타는 횟수가 한 번만 줄어도 아이는 한결 여유를 느낀다. 요즘에는 한 시간 거리의 학교에도 데려다주곤 한다. 코로나만 없으면 기숙사에 생활하겠지만, 지금은 집에서 등하교를 하고 있다. 고등학생이다 보니, 차 안에서 그리 살가운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그래도 툭툭 내뱉는 말에는 따스함이 묻어있어 대견할 때도 있다. 가끔은 차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며 놀라기도 하고, 동생과 시시콜콜 다투었던 얘기, 친구와 있었던 일 등의 서로가 겪는 일상의 일들을 주고받기도 한다.
요즘처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지금까지는 없었다. 이런 변화는 회사에서 멀어지면서 생겨났다. 19년 말, 보직 해임을 당하고, 급기야 얼마 전 퇴사를 하면서 시간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회사 생활에서는 시간의 자유를 느끼기 어려웠다.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이상 거리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고, 바쁘게 돌아가는 일과를 마친 후에는 늘 그렇듯, 저녁을 먹으며 한 잔 마시고 택시로 퇴근을 했다. 회사가 멀다 보니, 집에 오면 출근하기 싫고 회사에 오면 북적대는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기 싫었다.
이런 생활이 극에 달했던 때는, 2019년, 바로 작년이었다.
19년, 나는 하늘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주차장에서 출발해, 주자창에 도착하고, 꽉 막힌 집무실에 들어가면 그 길로 집무실과 회의실을 왕복했다. 그렇게 살던, 11월의 어느 날 나는 해임을 통보받았던 것이다. 지금은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왜 이렇게 불행한 일이 나에게..' 하고 생각했다. 전해 들은 말이지만, 어떤 사람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갑작스레 해임당한 후에, 2년간 자리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사무실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글쎄, 그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확실히 큰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지원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으며, '행복해져라'라고 반복하는 노래처럼 아내와 함께 넉넉하진 않지만 행복하길 바랐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는 꽤나 열심히 살았다. 대학원을 다니고 각종 자격증을 땄으며, 회사 내에서 각종 인증을 받으면서 전문가 커리어를 쌓았다. 임원이 될 마음은 없었다. 임원은 언제 어떻게 해임을 당할지 모르는 위치니까. 팀장 생활을 5년 정도 한 후에는 내 분야의 전문가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계획과 어긋나게 '임원'발령을 받고 해임을 당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치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해임 통보를 받던 날, 인사 임원은 내게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했다. 정치력이라니. 대부분의 임원들은 팀장 생활 10년가량을 경험한 후에 진급을 하는 데, 나는 너무 빨랐다. 그렇게 빨리 나를 진급시켰으면서, 그들은 도대체 나에게 얼마나 큰 정치력을 기대한 것일까?
'나는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 나 이제 겨우 1년 차인데..' 하고 생각했다. '에이, 모르겠다. 부족한 걸 알 테니, 성장하길 기다려 주겠지. 그리고 어떻게든 성장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전임자가 한 일 까지도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마치, '그거 정리하고 책임지라고 너 진급시키고 월급 준거야' 하는 느낌이었다.
해임당한 날,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겐 어떻게 얘기할 것이며, 팀장들과 조직원들에게는 또 어떻게 알려야 할지, 그리고 수군거릴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괜찮은 척, 쿨 한 척하며 다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어, 장기 휴가를 내기로 결심하고 팀장들에게 먼저 알렸다. 그리고, 곧이어 나를 발탁하고 해임시킨 부사장과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회사가 우리보다 힘이 세니까, 어쩔 수 없지.."
부사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이 '나는 너보다 힘이 세니까'로 들렸다. 그와 나는 나의 전임자가 만들었던 솔루션 때문에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수 백억이 들어간 솔루션이었다. 당연히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받고 진행한 일이다. 기술 트렌드를 따라 만든 솔루션이었고, 속된 말로 아주 광을 많이 팔았다. 광을 팔려면 대충 만들더라도 대외적인 홍보가 중요하다 보니, 완성되지도 않은 불완전한 제품으로 과잉 마케팅을 펼쳤다. 설상가상으로 기술만 보고 솔루션을 만들다 보니 시장에는 큰 니즈가 없었다. 니즈도 없는데 완성도도 떨어지는 솔루션의 판매가 잘 될 리 만무하다.
정치적으로 한 판 잘 써먹었지만, 수백억이 들어간 솔루션은 사장에게 부담을 줬다. 임원진의 일부는 성과를 기대하고, 일부는 불평과 비난을 하고 다녔다. 말은 에너지다. 소문은 소문을 만들고, 결국 곧 번개가 내리칠 것만 같은 부정적 기류를 만들었다. 곧, 누군가에게 번개를 내리치고 말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나였다. 이 번개를 피하기 위해서는 타개책이 필요했지만.. 나는 부사장을 넘어서지 못했다. 타개책이 들어간 보고서마다, 사전 리뷰를 하며 딴지.. 음, 상충된 의견을 냈다. 몇 번씩 다시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모두 보냈다. 그야말로,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면서 타개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놓쳤다.
사장은, 자신의 의사결정으로 만든 솔루션이었기 때문인지, 부담을 느끼면서도 언급하길 피했다. 그는 내가 보직을 받은 초기에는 "어떻게 좀 해봐"라는 말을, 나중에는 "성과가 없잖아"라는 짜증스러운 말을 나를 향해 던졌다. 성과가 없긴 했지만, 성과를 만들기에는 솔루션의 품질과 인식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음, 속된 말로.. (다른 이가 싼) 거대한 똥이었다. 그리고 1년은 뭔가를 어떻게 하기에는 생각보다 짧다. "네 능력의 문제야"라고 한다면.. 솔직히 "당신이 처리하세요"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질 못했다.
"승화를 시켜! 회사 관두지 말고, 애도 키워야 되잖아!"
면담 자리에서 사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그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 여유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와 면담을 끝낸 후, 나는 '승화를 시켜!'라는 말과 '애도 키워야 되잖아!'라는 말을 곱씹었다. 애를 키우기 위해서 승화를 시켜야 하다니. 먹고사는 것을 위해서 승화를 시키라니. 자유를 위한 승화, 평화를 위한 승화, 이런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승화를 하라는 말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말은 참 웃긴다. 삶은 정말, 겨우 먹고사는 문제일 뿐일까? 삶을 먹고사는 문제라고 받아들인다면, 뭐하러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 이상을 추구하는 것인지. 삶에는 무언가 실현해야 할 저마다의 소명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 삶은 먹고사는 문제 이상의 것이다.
나는 아내와 딸들에게도 해임 사실을 알렸다. 나는 "잘렸어"라고 짧게 말했고, 아내와 딸들은 "괜찮아"하고 짧게 답했다. 눈물도, 한숨도, 비난도 없는 그 말 한마디, 그 한 마디가 고마웠다. 괜찮아, 라는 그 말에 위로를 받았지만, 밤만 되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지난 일들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올라오는 나의 짜증에 아내와 딸들은 마음을 졸였고, 나 또한 '남 탓하는' 나의 모습을 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잠시 홀로 있고 싶은 마음에, 명상 센터에 입소를 했다. 전북 진안의 위파사나 명상센터. 1년 전에 가고 싶어 예약을 했지만, 갑자기 임원이 되면서 가지 못했던 곳이다. 원래 예약 없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나는 운 좋게 갑자기 취소한 사람을 대신하여 갈 수 있었다.
3일 후, 나는 전북 진안에 있는 위파사나 명상 센터에 입소를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명상에 빠져들었으며,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던,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내 옆에는 행운이 있음에 틀림없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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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출처
- Anna Shvets 님의 사진,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