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만드는 디자인
달그락 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거실, 텅 빈 공간에서 오는 차가운 공기...
도시의 분주한 소리에 지쳐 적막함으로 들어갔다가도 어느 순간 그 적막이 외로움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메신저의 알람은 끊임없이 울리지만, 이 적막함 속에 이유없이 인사를 건넬 사람은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일상의 힘을 만드는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고도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고립감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차 한잔의 온기와 마주보는 얼굴은, 기술의 편의성 아래 채팅창의 이모티콘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편리함은 더해졌지만 함께 머무르는 관계의 자리는 줄어들었고, 협업의 기술들을 날로 발전했지만 돌봄은 주변으로 밀려났습니다. 수많은 관계들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잊혀져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 관계들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구조를 약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단절과 분열을 만들고 사회신뢰를 무너뜨리면서 말입니다.
지속가능성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함께 돌보는 구조, 함께 결정하고 만드는 과정은 지속가능성에서 중요한 가치입니다. 관계를 만드는 디자인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런던에는 사회적 고립감을 다룬 'Relationship- centered city project' 가 있습니다. 한 조사에서 32%의 런던 주민이 사회적 고립감을 느낀다는 지표가 발표되었고, 도시공동체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에 대한 우려들이 깊어지면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됩니다. '관계'라는 것이 공공정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요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도시정책과 공공서비스, 조직 운영 방식에서 '좋은 관계'를 중심 원칙으로 둔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지 질문하면서 공동주거, 사람들이 오고가는 공공공간, 커뮤니티의 관계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공동디자인 co-design' 은 주요 전략으로 선택되었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디자인 워크숍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부분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또한 디자인 워크숍 이후 여러 보고서를 통해 관계중심 실천이 지자체와 커뮤니티, 공공조직에 적용된 사례들을 정리하고, 이를 위한 툴킷과 조직문화 설계 가이드를 공개했습니다. 공동디자인 co-design 과 공동창조 co-creation는 초기 워크숍을 넘어 디자인 도구개발로 이어졌고, 2023년에는 Relational practice academy 설립 계획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아카데미를 통해 관계 중심 실천의 이론 및 실천적 기술, 디자인 도구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례를 조금 살펴본다면,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관계중심 의회 Relational Councils'를 운영하여 저소득층의 생계 위기 대응과 같은 실제 커뮤니티의 주요 사업에서 관계를 정책 서비스의 우선순위로 둔 것이 있습니다. 생계 위기 대응에서는 단순 지원금이 아니라 개인이 지역사회와 연결되고, 비물질적 돌봄과 연대가 제공되는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또한 '커뮤니티 브릿지빌더 community bridge builder' 라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다양한 지역주민들을 연결하는 워크숍을 구성했습니다. 이 워크숍은 대화/경청, 갈등 조정, 공동의 목표 등의 주제를 다루고, 다양한 도구들을 통해 자신의 일상에서 실천하고 공유하도록 합니다.
"괜찮아?" 하는 한마디에 마음 한 구석 다시 되살아나는 무언가...지속가능한 일상은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어떤 반짝이는 아이디어들 보다 중요한 것은, 작고 느슨한 연결들일지 모릅니다.
참고.
https://www.octavia.org.uk/assets/0001/2046/Social_Isolation_in_London.pdf
https://relationshipsproject.org/understand/the-relationship-centred-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