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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Apr 10. 2021

레드라이트

요 근래 운전을 할 때 마다 교차로에서 주황 신호를 자주 만났다. 액셀레이터를 밟아야 할 지 아니면 급히 브레이크로 발을 옮겨야 할 지 머뭇거리는 상황이 하루에도 수 차례였는데, 무리해서 가속페달을 밟은 기억이 더 많다. 사실 신호에 걸려 한번 더 쉬어 간다고 해서 30분, 1시간 늦는거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빨간 불로 바뀜을 인식하고도 더 깊게 발을 밀어 넣었다. 그래서 돌아봤다.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하고 있을까. 그 기저엔 조금도 더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최선을 다한 삶. 무언가 다 쏟아내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후련함이란게 있다고 믿는다. 그건 분명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군가의 의한 평가가 아닌 스스로 본인에게 내리는 감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의 연연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이다. 이 두 감정은 분명 공존 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한 그 행위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결과는 납득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는 더 손해보고 싶지 않다. 이게 내 마음 안에 있었나보다. 이 마음이 생각과 몸을 지배한다. 비단 운전뿐 아니라 삶의 여러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심지어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조차 이런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나를 더 고립되고 메마르게 하는 것도 같다.


오늘 오전 몇 개의 설교를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큰 과제이기에 여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도 싶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들어오는 말씀은 아래와 같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내가 손해 볼 여력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나는 피해자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아픈 사람이다. 그러니 이 정도는 감수해줘라. 라고 주변에 어두운 기운을 힘껏 내뿜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본다. 이게 사실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노력하고 인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이런 인지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글로 남기고 다시 노력하려 한다. 짧게 쓰고 운동하려 했는데, 쓰다보니 이 정도 생각을 정리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뭘 하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느리다. 그럼에도 또 용기를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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