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력의 숫자는 3월을 가리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봄을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날들입니다.
얼마 전 지인이 제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여러분은 사진 속에서 어떤 것이 먼저 눈에 띄시나요?)
어떤 사진일까 슬쩍 들여다본 제 눈엔 의문스러운 편의점과 이불집만이 비칠 뿐이었습니다.
‘이걸 왜..?’
이어진 생각도 어째서 '편의점과 이불집일까'에 관한 고민이었습니다. 저의 의문이 머쓱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편의점 앞에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에는 꽃이 피어나고 있었고, 그가 제게 보내온 것은 다름 아닌 남부지방에 봄이 먼저 왔음을 알리는 예쁜 마음이었죠.
사실 저야말로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류의 감성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의 무심함은 제 스스로에게는 더 큰 발견으로 다가왔습니다. 올 해의 첫 꽃망울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호들갑이라면 제가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이 이야기만큼 저의 근황을 잘 설명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지금의 저더러 여유를 갖으라 이야기하지만 봄꽃을 쉬이 지나치지는 법 없이 평생을 살아왔던 저에게 특별함과 경외로움이란 오히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에서 발견하게 되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 내 하루하루를 갈고 또 갈아냈습니다. 커피 마시는 시간과 방법, 듣는 음악과 장소, 지하철에서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봐야 하는 구간, 명상하는 장소와 시간, 헬스장에서의 루틴(여기에는 셋업 전에 박수를 두 번 친다던가 하는 것들도 포함), 식사는 언제 어떤 음식을 먹고, 자기 전에 세 시간 동안 갖는 카페 가기 등등 하나하나 나열하기에도 지겨울 정도로 크고 작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본래 정신없고 산만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제가 이런 반복된 루틴 속에서 발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유입니다. 1주일에 한 가지씩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또 그 습관이 정착되면 다음 습관에 집중하는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몰입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경험의 순간이었습니다. (몰입이나 일상의 자율주행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SNS 중독에 가까웠던 제게 어느 날은 갑자기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스크롤을 내리고 숱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시간들이 너무 무의미하게 다가왔습니다. 루틴을 통해 자유로워진 정신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생각이 요구하는 달콤한 유혹들보다는 나의 의지조차 개입할 틈 없이 매 순간 주어진 루틴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함을 되뇌고 또 되뇌었습니다.
유난히 길었던 올 겨울 내내 사람과의 만남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수많은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또 필요한 내용이라면 유튜브에서 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스스로 명상과 사색을 통해 고민도 많이 했고요.
결국 모든 것은 태도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주어진 내 삶에 대해 태도를 바꾸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남을 탓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고요. 조금 늦었지만 이제와 서라도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다가오는 좋은 소식들은 놀라움과 감사함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이어트 뒤에 먹는 물과 음식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합니다. 일도 사람도 사랑도 그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헤매다가 만난 것은 그런 비슷한 달콤함이었습니다. 내가 동굴에 있던 그 시간에도 찾아와 준 인연들은 고귀함과 신성함이라는 단어에 가까웠습니다. 진실한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고 살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어딘가 모르게 예전과 다르다거나 다소 무관심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이제 다른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이 더 소중해졌기 때문입니다.
저를 응원은 하기까지는 않으시더라도 관찰예능 한 편 본다 생각하시고 저의 앞으로를 지켜봐 주시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럼, 당신께도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