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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기훈 Oct 17. 2023

디지털시대의 오펜하이머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흥미롭게 보았다. 극 중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2차 대전 중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이를 성공시킨 인물로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실제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그 파괴력과 살상력에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후 반전운동을 전개하며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가 이룬 업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https://www.oppenheimer.co.kr/


 거대 IT기업이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상호작용하고 정보를 소비하며 종종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 한번 상상해 보자. 당장 스마트폰이, 카카오톡이, 유튜브와 스포티파이가 없는 당신의 하루는 어떠할 것 같은가? 이러한 디지털 서비스들은 개개인에 따라서는 유용성이 더 크다 할 수도 있겠으나 반드시 그러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일에는 너무 과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지나친 정보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무분별한 정보습득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간한 ‘2022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 중 23.6%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하며 38.3%는 스스로가 스마트폰의 과다 이용에 대해 ‘그렇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본인의 스마트폰 이용이 과다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이것을 바로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루에 습득하는 정보의 양과 질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개인에게 필수로 요구되는 능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스마트폰 과다 의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카카오톡은 ‘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새로이 추가하였으며, 애플의 제품은 ‘스크린타임’ 앱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다. 또한 구글과 삼성도 ‘디지털 웰빙’이라는 안드로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먼트(Moment), 스태이프리(StayFree), 유어아워(YourHour)와 같은 스마트기기 사용통계를 제공하고 시간관리를 도와주는 앱 서비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폰 ‘스크린 타임’ : 사용자는 특정 앱이나 웹사이트에서의 시간 소비 통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앱 시간제한, 다운타임 등의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페이스북 ‘대시보드’ : 위와 유사하게 하루 중 페이스북 앱에 접소한 시간과 횟수를 통계와 함께 보여준다.

카카오톡 ‘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구글, 삼성 ‘디지털 웰빙’

모먼트(Moment), 스태이프리(StayFree), 유어아워(YourHour) : 스마트기기 사용통계 및 관리 어플



 수많은 어플에서 오는 원치 않는 정보와 텍스트, 그리고 과다한 알림이 곧 이용자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점을 서비스 제공자도 인정한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2023 워크 트렌드 보고서’ 내용을 보면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57%의 업무 시간을 단체 채팅, 화상 회의, 이메일 등 소통 업무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에서 소통의 비중이 커진 만큼 한편으로는 이에 따른 스트레스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소통 업무의 불필요한 부분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디지털 기업들의 이러한 행보는 마치 오펜하이머처럼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서비스에 쉽게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그러한 중독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그가 가진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핵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했지만 그의 노력도 이미 시작된 국제적인 핵 확산을 막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업들이 제공하는 "디지털 웰니스" 기능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용자 개인의 차원에서 자신의 디지털 생활습관을 파악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일어나는 소통과 소비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오펜하이머가 일찍이 이해했듯, 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과 위험은 상반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디지털 생활을 적극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디지털 문명이 주는 축복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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