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술을 알았다.
지금은 거의 마시지 않지만,
그 시절엔 그게 이상한 일도, 금지된 일도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도, 그리고 내가 자라던 동네도 술에 대해 꽤 관대했다. 누구네 제사 날이면 술 한 상은 당연히 따로 마련되었고, 그 상은 동네 청년들,
지금 말로 치면 중고등학생 또래들이
사랑방에 둘러앉아 나눠 마시는 자리로 이어졌다. 나는 그보다도 더 어릴 적, 아직 취학도 하기 전부터 그 자리에 끼어 홀짝거리곤 했다. 잔칫날이면 구석에서 식혜와 전을 먹다가 어른들 술상에서 주전자 하나 슬쩍 가져다 입만 대보던 기억이 또렷하다.
중학생쯤 되면 제사가 있는 날에 어른에게서 직접 잔을 받으며 음복(飮福)이란 이름의 통과의례가 있었고, 그즈음부터는 아이들만의 술상이 사랑방 한쪽에 따로 차려지곤 했다.
그때 우리는 그 술맛을 배우려 했던 게 아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기분, 어른들이 앉는 자리에 나도 초대받았다는 감각이 그 한 잔 속에 들어 있었다.
허용이 아니라 인정, 관대함이 아니라 공존의 문화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풍경이 거의 없지 않을까?
청소년이 잔을 드는 모습은 뉴스가 되고, 걱정이 되고, 지적의 대상이 된다.
물론, 지금 와서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자는 말은 아니다. 그저 그 시절에는 어른들과의 접촉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가는 통로가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잔 하나 건네며
“이제 너에게도 어른스러운 게 필요함을 알지?” 하던,
같은 자리에 앉히며 조심스레 건네던 말투,
어색한 웃음 뒤에 따라오던 책임감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체험이 되어준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어른들이 자리를 비워버린 시대,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인터넷과 친구들 사이에서 눈치로 익히진 않을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걸 혼자 감당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그게 문제로 보인다.
어른이란 그저 먼저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사랑방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할 만한 말과 눈빛, 시간과 온기는 지금 우리 곁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과거의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어른들이 잔 대신 건넬 수 있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