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송운은 출근 준비를 마친 월하를 보며 다시 한번 놀랐다. 낡은 겉옷 대신 송운이 억지로 사준 단정한 셔츠를 입은 월하는 모델 같았다.
“월하 씨, 출근할 땐 나한테서 5m 이상 떨어지세요. 당신 때문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딱 질색이니까.”
“5m? 운명의 실이 닿지 않을 거리요! 너무 가혹하오.”
“운명 금지! 어서 타요.”
송운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낡은 소형차에 월하를 밀어 넣었다. 차가 막히는 도로 위에서 월하는 끊임없이 이어진 창밖의 건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송운 아가씨, 저것들은 다 무엇이오? 왜 모든 건물이 네모반듯하고 창문이 많은 것이오?”
“저건 아파트, 빌딩, 회사예요. 인간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죠.”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가장 훌륭한 신(神)의 거처인 셈이오?”
송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요. 가장 높은 빌딩은 가장 비싼 땅에 세워진 건물이에요. 돈이죠. 신이 아니라.”
결혼정보회사 ‘퍼센트 매칭’에 도착하자마자 월하의 외모 때문에 사무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송운에게 "저 모델은 누구냐", "송 매니저 드디어 남자친구 생겼냐"며 수군거렸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이분은 이번에 새로 채용된 ‘계약직 매력 컨설턴트, 월하’ 씨입니다. 외모 스펙은 최고지만 연애 스펙은 제로예요. 모두 통계와 논리에 관해 도와주세요.”
그때 송운의 라이벌인 ‘김 이사’가 나타났다. 김 이사는 이 세계에서 매칭률을 극대화하는 데이터 분석의 귀재로 통했다.
“송 매니저. 아무리 비주얼 마케팅 시대라지만 저렇게 출처 불분명한 미남을 데려다 놓는 건 우리 회사의 신뢰도 통계를 떨어뜨립니다. 게다가 스펙 제로라면서요?'
“제 실험 대상이에요. 비과학적인 아름다움이 매출 통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험해 보려고요.”
월하의 첫 공식 임무는 ‘매칭률 95% VIP 여성 회원’의 컨설팅이었다. 그녀는 완벽한 스펙을 가졌지만 매번 썸 단계에서 이별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항상 연애 초반에 너무 잘해주는 게 문제래요. 그래서 이번에는 ‘밀당’을 좀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송운은 월하에게 쪽지를 건넸다.
<오늘의 지침 : 연락은 3시간 뒤, 칭찬 1회 후 단점 1회 지적.>
월하는 쪽지를 읽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칭찬 후 단점 지적이라니! 이것은 운명의 실을 잘라내는 행위요!”
하지만 송운의 살벌한 눈빛을 보고는 마지못해 VIP 회원에게 말했다.
“좋소. 밀당을 하시오. 연락은 3시간 뒤에 하시오. 다만, 그 3시간 동안 당신이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잊지 마시오. 그리고...”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송운의 지침을 무시하고 자신의 진심을 담아 차분히 조언했다.
“칭찬은 하되 단점을 지적하지 마시오. 대신에 당신의 가장 깊은 고독을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의 외로움에 엮이는 것이오.”
송운은 옆에서 벌떡 일어섰다.
“월하 씨! 계약 위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하지만 VIP 회원은 월하의 얼굴과 순수한 진심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월하 컨설턴트님... 제게 부족했던 건 스펙이 아니라 진심이었군요. 알겠습니다! 3시간 뒤에 연락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송운은 또다시 기적적인 소식을 접했다. VIP 회원이 ‘매칭된 남성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문자였다.
“송 매니저님, 월하 컨설턴트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3시간 뒤에 연락하면서 제 고독을 털어놓았더니, 그분이 ‘당신이 그 고독의 끝에서 나를 찾아주었구나’라고 말하며 울었어요. 저희, 진심으로 만나요! 운명 같아요!”
송운은 머리가 복잡했다. 그녀의 통계와 논리는 실적 100%를 기록한 월하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저 남자... 확실히 뭔가 있어. 운명론자인 줄 알았더니, 어쩌면 나보다 더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하지만 운명은 아닐 거야. 단지 비주얼이라는 엄청난 통계적 오류일 뿐이야.'
그날 저녁, 송운은 월하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월하 씨, 오늘은 '검색'을 배우죠. 당신의 운명을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붉은 실 대신 구글을 이용하세요.”
월하는 환하게 웃었다.
“좋소! 당신과의 학습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소!”
송운은 월하의 순진한 미소에 다시 한번 심장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지만, 곧바로 철벽을 쳤다.
“그렇게 웃지 마세요. 난 당신을 인간적인 동거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회사 매출을 책임질 도구로 보는 거니까.”
송운은 애써 차갑게 말했지만 월하는 그녀의 눈에서 아주 작고 미세한 붉은색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운명의 실이 엮이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색깔이었다.
월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운명은 통계를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