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사라진 세상

by 일야 OneGolf

다음 날 아침,

월하는 회사로 출근하던 중 처음으로 '신계의 경고'를 접했다.
​하늘은 맑았으나, 월하의 눈에만 보이는 붉은색 섬광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것은 신계 통신관이 보낸, '인연의 붕괴'를 알리는 긴급 메시지였다.


​[신계 위원회 긴급 통신]
월하노인, 즉시 임무 복귀를 명한다.

그대의 무단이탈 후, 인간계의 인연 실타래가 완전히 꼬여 '인연 불성립 세태'가 가속화되고 있다.


증거 : 서울 지역 결혼율 70% 급감, 이혼율 50% 급증. 인연의 끈이 통계와 계산에 압도되어 진정한 사랑이 소멸하고 있다.


최후통첩 : 이 질서 파괴를 멈추지 않으면, 신계는 인간계에 개입하여 그대를 강제 소환할 것이다.


​월하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로맨스 때문에 세상의 질서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었다니. 그는 이 사실을 송운에게 말할 수 없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송운의 통계팀이 아닌, 세상 자체가 월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송운 : "오늘 아침 뉴스 보셨어요? 갑자기 전국의 결혼정보회사들이 대규모 환불 사태에 직면했어요. 매칭률 99% 커플들이 죄다 파혼하고 있대요. 이유가 뭐냐면..."


​직원 : "서로가 '스펙은 완벽한데 가슴이 안 뛴다'고 하더래요. 논리적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전혀 연결이 안 된다는 거죠."


​송운은 당황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논리를 고수했다.


​송운 : "이건 현실 불안 때문이에요. 월하 씨의 운명론 때문이 아니라고요! 오늘 우리는 매칭률 95% 커플의 최종 만남을 성사시켜서, 이 세태가 일시적 현상임을 증명해 봐요!"


​송운은 월하를 이끌고 자신의 '완벽한 통계 커플'이 만나는 장소로 향했다.

​송운이 자신 있게 통계를 적용한 커플은 엘리트 직장인과 미모의 의사 커플이었다. 그들은 송운의 각본대로 대화하고,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며 웃고 있었다.


​송운 (속삭이며) : "보세요, 월하 씨. 완벽하잖아요. 저들의 대화 동선, 칭찬 타이밍 모두 내가 짠 대로예요. 이것이 현실이에요. 운명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고요."


​하지만 월하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커플 주변의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그들 사이를 엮어야 할 인연의 기운이 극도로 약해지고 있었다.
​월하 : "송운 아가씨. 그들은 서로의 스펙을 사랑하는 것이지, 서로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오. 저들에게는 운명의 실이 닿지 않았소."


​바로 그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말했다.
​남자 : "죄송합니다. 통계적으로 당신은 완벽하지만, 오늘 아침에 제가 산 로봇 청소기가 당신보다 더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로봇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남자는 명함을 테이블에 던지고 돌아섰다. 여자는 충격에 빠져 눈물을 흘렸다.


​송운 : "말도 안 돼! 왜! 왜 로봇 청소기가 더 매력적이라는 거죠? 데이터에 없던 결과예요!"

​송운의 마지막 논리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통계와 논리로 완벽했던 커플이, 비논리적인 '감정의 소멸'로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송운은 멘붕에 빠졌다.


​송운 : "내가 틀렸어요... 내 모든 통계가 틀렸어. 세상이 정말 변하고 있어. 내가 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없어요! 통제 불능이라고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월하 : "그것이 바로 운명이오. 송운 아가씨. 통제할 수 없는 것. 논리로 엮을 수 없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오."


​월하는 송운을 진심을 다해 살포시 안아주었다. 송운은 잠시 저항했지만, 이내 그의 품에 기대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인정했다.


​송운 : "나를... 도와줘요. 월하 씨. 당신의 운명론이... 정말 맞다면, 나를 당신의 운명으로 만들어줘요."


​월하 : "당신은 이미 나의 운명이오. 나의 월하부인이 될 운명이오."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그 순간. 하늘에서 섬뜩하고 차가운 기운이 내려왔다.


​[신계 위원회 통신] : 월하노인! 현 시간부로 강제 소환을 개시한다. 인연의 질서를 파괴한 책임을 물어 즉결 심판에 회부한다!


​차갑게 빛나는 신계의 소환진이 두 사람의 발밑에 펼쳐졌다. 월하는 송운을 끌어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월하 : "안돼! 나는 나의 운명의 짝을 찾았소! 나는 돌아가지 않겠소!"


​하지만 신계의 힘은 강력했다. 월하의 몸이 빛을 내며 하늘로 빨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송운 : "월하 씨! 안 돼요! 가지 마요!"


​송운은 필사적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 신계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월하는 마지막 힘을 짜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월하 : "송운... 나의 월하부인. 나는 당신을 두고 가지 않소. 벌을 마치고 돌아오겠소. 당신을 나의 영원한 짝으로 맞이하기 위해!"


​월하는 송운에게 마지막 마음을 전하며, 빛과 함께 하늘로 사라졌다. 송운은 홀로 텅 빈 매칭 장소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볼에는 월하의 마지막 온기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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