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90%의 실망과 10%의 희망

by 일야 OneGolf


​강원도 영월, 석천건설 제4 채석장.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대한 화강암 절벽 아래, 굴착기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위의 살을 파내고 있었다. 그 거친 소음의 정점에는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거대한 암반이 서 있었다.


​"물러서!"


​쩌렁쩌렁한 고함과 함께 폭발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쿠쿠궁—!


​거대한 바위가 제 몸을 찢으며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매캐한 화약 냄새와 자욱한 돌가루가 안개처럼 현장을 덮쳤다. 채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노인이 안전모를 벗으며 걸어 나왔다. 석천건설의 창업주, 손 회장이었다.


​그는 아직 폭파의 잔영이 가시지 않은 암석 더미를 바라보며,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수많은 면접관이 앉은 화려한 회의실이 아닌, 화약 냄새 진동하는 벼랑 끝이 그의 면접장이었다.


​"어떠냐. 저 단단한 게 깨지는 꼴이."


​사내, 백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자욱한 먼지 너머, 방금 찢겨 나간 바위의 단면에서 희미한 물줄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터뜨릴 수 있네요."


​백강후의 목소리는 폭발음 뒤의 정적보다 낮고 단단했다.


​"되겠어요."


​손 회장은 흙 묻은 장갑을 벗어던지며 껄껄 웃었다. 사내의 눈에는 바위가 아니라, 그 바위 속에 갇힌 샘물이 보인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럼, 터뜨려봐."


​단 한 번의 대화, 그것으로 끝이었다.


​연습장 입구의 자동문이 신경질적인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채석장의 그 뜨거웠던 폭발음은 이곳에 없다. 대신 썩은 물처럼 고인 정적만이 타석마다 길게 늘어져 있었다.


​감독은 도망치듯 사표를 던졌고, 유일했던 코치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라이벌 팀으로 이적했다. 남겨진 이들에게 그것은 충격이라기보다 익숙한 '인정'에 가까웠다. 버림받는 것, 그리고 잊히는 것. 이곳 선수들에게 그것은 공기처럼 당연한 일상이었다.


​김인아는 구석 타석에서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며 의미 없는 빈 스윙을 반복했다. 유시영은 클럽하우스 소파에 길게 누워 게임기에 몰두해 있고, 강건한은 샌드백을 치듯 애먼 샌드웨지로 매트를 사정없이 내려찍고 있었다.


​운영팀 직원들은 점심 메뉴판을 돌려보며 낄낄거렸다.


​"새 코치 온다며? 이번엔 또 어떤 퇴물이라냐?"


"몰라. 회장님이 직접 데려온다던데. 보나 마나 어디서 사고 치고 오갈 데 없는 놈이겠지."


​낡은 하프백을 어깨에 멘 사내가 연습장 입구에 멈춰 섰다. 구두 끝에 묻은 채석장의 붉은 흙이 먼지 쌓인 카펫 위로 투둑, 떨어졌다. 사내는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입구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그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공을 때리는 선수들, 잡담을 나누는 직원들. 그는 아무런 지시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낡은 모자챙을 눌러쓰고는 그들을 구경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사내의 구두 끝에 묻은 붉은 진흙이 카펫 위로 마른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채석장의 화약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그 흙은, 연습장의 묵은 먼지 위로 이질적인 자국을 남겼다.
​선수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사내의 발끝으로 향했다.


​"뭐야, 공사판에서 일하다 왔나?"


​유시영이 게임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툭 내뱉었다. 곁에 있던 운영팀 직원이 낄낄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회장님이 요즘 건설 현장에 사람 부족하다더니, 진짜 인부를 코치로 보낸 거 아냐? 여어~ 아저씨! 여기 타석 배정받으러 왔어요?"


​백강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자챙 아래로 드러난 그의 눈은 차가운 얼음처럼 고요했다. 그는 비웃음이 쏟아지는 타석 사이를 지나, 연습장 가장 구석진 곳, 조명조차 침침한 18번 타석에 낡은 하프백을 내려놓았다.


​인사를 건네지도, 통성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가방에서 낡은 수건 한 장을 꺼내 타석 바닥을 닦고는, 그 위에 신문을 펼치고 앉았다.


​"......?"


​비웃던 이들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기선제압을 하려 들거나, 훈계를 늘어놓을 줄 알았던 예상이 빗나간 탓이다.


​강건한이 홧김에 드라이버를 거칠게 휘둘렀다.
콰앙! 애먼 매트가 찢어질 듯 울렸지만, 백강후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신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공이 맞는 소리,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 그리고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한 시간, 두 시간.


백강후는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가끔 신문 페이지를 넘기거나, 구두에 묻은 붉은 흙을 털어내는 것뿐이었다.


​오히려 초조해진 건 선수들이었다. 자신들의 샷을 평가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그 기이한 무관심이 그물망처럼 연습장을 덮기 시작했다. 무시당하는 것보다 무서운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당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 진짜 뭐 하는 거야?"


​김인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연습장의 창문에 푸른 어둠이 깔렸다. 백강후는 그제야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는 들어올 때처럼 단 한 번의 인사도 없이 자동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이 열리려던 찰나, 백강후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타석 옆 거치대에 버려진 듯 꽂혀 있던, 주인을 알 수 없는 낡은 7번 아이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루브는 뭉개졌고 넥 부분엔 녹이 슬어 구부정한, 그야말로 폐급 클럽이었다.


​백강후는 장갑을 끼지도, 어드레스를 잡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 돌멩이를 차듯, 선 채로 그 고철 덩어리를 툭 휘둘렀다.


​깡—!


​연습장을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음이 정적을 박살 냈다. 선수들이 채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공은 이미 반대편 스크린 정중앙을 강타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백강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동문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선수들과 직원들이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야, 방금?"


누군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데이터 팀 직원이 습관적으로 화면을 확인하다가, 이내 비명 같은 신음소리를 뱉었다.


​"이... 이거 봐. 미친 거 아냐?"


​모니터에는 믿기 힘든 숫자들이 떠 있었다.


​볼 스피드(Ball Speed): 72m/s
​스핀량(Back Spin): 7,000rpm (오차범위 0)
​비거리(Carry): 185m


​"7번 아이언으로... 그것도 저런 고철로 볼 스피드 70을 넘겼다고? 정타(Smash Factor) 지수가 1.5가 찍혔는데?"


​7번 아이언의 물리적 한계를 비웃는 숫자였다. 기계가 고장 난 게 아니라면, 방금 사내는 공의 정중앙을 분자 단위로 쪼개서 날려 보낸 셈이었다.


​정적은 아까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선수들은 백강후가 나간 빈 문과, 화면 속의 비현실적인 숫자를 번갈아 보며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카펫 위에는 사내가 남긴 붉은 흙먼지만이, 방금 일어난 폭발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